"니들이 오페라 맛을 알아?"
“니들이 오페라 맛을 알아?”
온 가족이 오페라를 보러 극장에 갔다. 온 가족이래야 우리 부부에다 대학 때문에 집을 떠나있는 큰 놈을 빼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둘째 녀석이 전부지만 가족이 모두 함께 오페라를 보러 온 것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코믹 오페라, <배비장전> 이미 그 줄거리가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데다 정통 오페라라기 보다는 서양 오페라에다 조미료로 우리 국악과 판소리 그리고 코메디적인 요소 까지 적당히 버무린 퓨전 오페라라 목 젓이 드러날 정도로 깔깔대면서 재미있게 보았다. 너무 근엄하기만 해 좀 체로 대중화 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 오페라를 조금이라도 보통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 가보려는 안간힘으로 읽혀졌다. 극장을 나오면서 보니까 우리 집 둘째 녀석도 꽤나 재미있었다는 표정이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도 거금을 주고 오페라 극장에 갔던 기억이 있다. 호주 시드니에서 있었던 국제광고 세미너에 참석차 갔을 때 일인데 시드니는 오페라 하우스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바람을 함뿍 머금고 대양을 향해 막 항구를 떠나려는 범선의 모습 같기도 하고 조개 껍질을 몇 개 포개 세워놓은 것 같기도 한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는 시드니를 대표하는 상징물이자 랜드마크이다. 함께 모시고 간 이사님께서 “최 국장, 우리 시드니에 왔으니까 오페라를 한번 보러갈까?”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거 그리 나쁘지 않은 생각 같아서 나 또한 “예, 그러시죠.”라고 맞장구를 쳤다. 덤으로 그 멋진 오페라 하우스의 내부도 보고 싶다는 욕심도 한 몫을 거들었다. 거리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니 다행히 그 유명한 <휘가로의 결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해보니 마침 표도 있고 호텔에 배달까지 해주는 지라 내가 갑자기 귀족이 된 느낌이었다. 그게 다 돈의 위력이었지만.... 그래서 우리 돈 13만원 정도를 주고 두 장의 티겟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 날 저녁, 온갖 폼을 다 잡아 가면서 가장 멋있는 정장을 차려 입고 우리는 오페라 하우스로 향했다. 손가락 움직임 하나에도 품위를 생각하면서 고상한 척, 우아한 척 척- 척-으로 일관했다. 이사님은 기사에게 평소보다 후한 팁도 주었던 것 같다. 드디어 오페라의 막이 올랐다. 어차피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할 것이라면 이태리어였으면 더욱 오페라다웠을 텐데 정작 공연이 시작되고 보니 대사는 영어였다. 영어라도 호주 사람들이나 서양인들도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운 모양인지 무대 천정으로 자막이 계속 흐른다. 허긴 우린들 우리 말 사설로 하는 판소리, 심청가나 춘향전 사설을 어디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던가?
오페라에 대한 호기심은 5분도 못갔다. 시작하고 담배 한 두 대도 못 피울 시간인데도 벌써부터 재미없기 시작한다. 어떻게 재미를 붙여 보려고 노력을 해봐도 먹고 죽을 래도 재미가 없었다. ‘그래도 이게 얼마짜리 오페라인데...’ 본전 생각에 꾹 참고 무대에 온 신경을 쏟아 부었다. 품위, 품위...를 되씹으면서 교양적으로 교양적으로다가 오페라를 보았다. 그래도 정말 재미가 없었다. 그 재미없는 오페라를 보면서 교양적인(?) 표정 까지 짓고 앉아있을 래니 숫제 고문에 가까워졌다. ‘그 비싼 돈을 주고 내가 이거 무슨 고생이람?’ 생각할수록 한심했다. 슬쩍 눈을 들어 옆자리 이사님을 봤더니 이사님 또한 오십 보 백 보인 듯 했다. 그도 교양적으로다가 교양적으로다가를 염불처럼 외우고 있음이 력력했다.
그런 기인, 너무나도 긴 인고의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2막이 끝났다. 드디어 중간 휴식이다. 로비에 나가 와인이나 칵테일 한잔씩 마시면서 무대를 바꾸는 15분 정도 쉬는 시간이다. 인터 미션 시간이 끝나고 다시 공연이 시작된다는 예비 종소리가 울렸다. 객석을 향해 돌아서는 나의 어깨를 잡으면서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이 이사님이 불쑥 말했다. “그만 가지.” 그 말이 어찌나 반갑던지... 본전 생각 때문에, 아랫사람의 처지로 차마 먼저 그 이야기를 못하고 있던 참인지라 ‘그만 가지’ 그 한마디는 그야말로 구원의 복음 그 자체였다. “재미없으시다면... 약간 돈이 아깝기는 하지마는 그러시죠 뭐.” 짐짓 아깝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한껏 생색을 내면서 나도 오페라 극장을 따라 나오고 말았다.
극장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면서 “어디로 갈까요?” 하고 물었더니 의외로 "킹스크로스(King's Cross)로 가지"라고 했다. 킹스 크로스라면 시드니의 대표적인 환락가... 우리는 5분을 달려 시드니 환락가의 퇴폐 쇼를 보러 왔다. 오페라 보다 훨씬 즐겁고 짜릿했다. 천국과 지옥 사이가 그렇게나 가깝다는 것을 나는 그날 저녁 처음 알았다.(어디가 천국이고 어디가 지옥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튿날 아침에 호텔 식당에 내려갔더니 다른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어제 밤에 뭐하면서 시드니의 밤을 즐겼나’고 물었다. 나는 목에 기부스하고 말했다. “오페라 하우스에 오페라 보러 갔어.” 다들 뷰티풀, 원더풀... 환타스틱....을 외치면서 부러운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시치미 뚝 떼고 한마디 더했다. “그런데 휘가로는 봤는데 결혼은 못 봤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일제히 내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그들에게 나는 말했다. “응 ~ 재미없어서 2막까지만 보고 나와 버렸거든.”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고소를 금할 수가 없다. 공중에 날린 그 돈이 지금도 아깝다. 오페라 하우스 내부를 구경한 값 치고는 너무 비싸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밤마다 오페라 극장을 꽉꽉 채우는 유럽의 신사 숙녀들이 절대로 나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 비싼 입장료를 내고 밤마다 오페라 극장을 찾는 걸 보면 내가 열 번 죽었다 깨도 알 수 없는 그 무엇. 그런 짜릿한 미적 쾌락이 분명 그들에게는 있을 것이다. 그들의 그런 짜릿한 미적 쾌락을 왜 나는 불감증 환자처럼 느낄 수 없는 것일까? 즐거움이 아니라 차라리 교양적이라는 이름의 고문이 되고 마는 것일까? 그것은 내가 오페라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오페라에 대해 체화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판소리 <춘향가> 완창 공연(약 8시간 소요)을 다보라면 나에게나 우리 아이에게나 즐거움이 아니라 명백한 고문일 것이다.
판소리 또한 우리만의 귀중한 문화유산이라는 말만 귀가 따갑도록 들었을 뿐 그것의 재미를 단 한번도 제대로 느겨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극단들은 여대생들이 먹여 살린다. 그나마 고등학교 때 까지 영화관을 찾던 여학생들이 무슨 바람이 부는 지는 모르겠으나 대학을 들어오면 연극 공연장도 함께 찾아주는 덕분이다. 변함이 없는 것은 여대생 관객만이 아니다. 연극하는 사람들 또한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춥고 배고프다. 왜 그럴까? 그 여대생들이 정말 연극이 즐겁고 재미있었다면 졸업하고 결혼한 다음에도 남편 손 잡고, 아이들 손 잡고 극장을 다시 찾아와야 마땅하다. 그러나 사정이 전혀 그렇지를 못하다. 졸업해 대학을 떠나면서 그들은 동숭동도 극장도 함께 떠난다. 그리고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니 그녀들의 졸업은 연극인들에게는 돌아오지 않는다.(Brige of No Return)인 셈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것은 섭섭하기는 할 망정 돌아오지 않는 여대생들을 욕할 일을 아니다. 연극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어야할 것은 여대생들 몫이 아니라 연극인들 몫이고 극단의 몫이기 때문이다.
월선리 예술인촌에서 여름방학 초등학생들을 위한 예술체험 캠프를 한다고 했다. 사군자니, 도자기 체험이니 서당 체험이니... 다양한 예술적 체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캠프의 교장을 맞고 있는 김 문호 선생을 만났더니 자기는 아이들에게 ‘그저 재미있게 놀다가 가라’고만 한다고 했다. 예술정신이란 유희정신에 다름 아니니 그 말은 지극히 옳고도 바른 말이다. 지식이야 거기 아니고라도 배울 수 있는 곳이 많다. 예술적 즐거움을 느끼고 깨닫게 하는 것 그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것도 어렸을 때 그것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의 중요하다. 우리의 가치관이 늦어도 열 살 이전에 완성된다는 인지심리학자들의 보고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어렸을 적부터 예술이 그리고 문화가 체화되여야 예술을 지속적으로 소비하는 문화인이 될 수 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듯이 문화란 그렇게 젖어 가는 것이지 하루 아침에 뚝딱 문화인이 만들어 질 수는 없다. 恒産이 있어야 恒心이 있듯이 역설적으로는 지속 가능한 예술 소비(자)가 있어야 지속 가능한 예술 생산(자)이 가능해질 것이 아니겠는가? 초등학생들의 예술체험캠프를 당신들이 밥벌이 하는 일이라 생각하지 말고 당신들의 밥그릇을 저축하는 일이라 생각하라고 말해주었다.
비엔나의 대학생들은 <오페라 극장의 입석 紳士들>로 통한다. 오페라 극장에서 맨 뒤쪽이자 맨 위쪽은 언제나 제비 꼬리 같은 연미복을 차려입은 채 서서 보는 그들 차지다. 엄청나게 싼 값의 입석 티켓은 음악의 나라, 오스트리아의 미래를 위한 투자이자 음악의 도시, 비엔나의 내일을 책임질 젊은 지성인, 대학생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기도 하다. 맨 뒷자리의 그들이 맨 위쪽의 그들이 졸업을 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앞쪽으로 아래 쪽으로 이동을 한다. 그 빈 자리는 새로운 젊은이들로 채워지면서 매일 밤 오페라 극장을 밝힌다. 지금 광주에는 문화수도 담론이 무성하다. 그 담론의 중심은 언제나 파리의 퐁피두 센터를 모델로 한 아시아 문화의 전당 건립 이야기다. 공짜 표나 생겨야 공연장을 찾고, 만족도는 표 값이나 좌석 위치와 비례하는 그런 시민들로는 어림없는 수작이다. 지금 내가 오페라 보다 더 보고 싶은 것은 오페라 극장의 입석 신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