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의 단상

노는 것과 쉬는 것의 차이 그리고 느림의 미학

소한재 2005. 6. 7. 00:24

제목 : 노는 것과 쉬는 것의 차이 그리고 느림의 미학

 

 

☆ 한가롭게 저녁 노을을 바라보았던 것이 언제였던가? 별이 쏟아지는 밤길을 걸어본 게 언제였던가? 찰삭 거리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수평선 위로 느리게 지나가는 고깃배를 바라본지는 또 얼마나 오래 됐던가? 드디어 2002년 7월부터 은행을 시작으로 주 5일 근무제가 실시되고 있다. 공무원들의 토요휴무제도 시험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TGIF는 훼미리 레스토랑 이름만이 아니다. Thanks God. It Friday! "야, 신나는 주말이다."는 뜻이다. 드디어 우리도 찾은 찾은 TGIF의 환희. 주5일근무제의 파장은 마케팅이나 광고에도 물론 우리 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 8282(빨리빨리)를 누르며 숨가쁘게 달려온 한국, 한국인 관광 버스가 출발하기 무섭게 우리나라 아줌마들은 일어나 마이크를 잡는다. 그리고 그 좁은 통로에서 뛰고 흔들기 시작한다. 이 박사(?)의 디스코 메들리가 신나게 울린다. 버스는 한순간에 달리는 카바레와 노래방이 된다. 갈 때 보다는 돌아올 때, 그 광란의 춤판은 집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극성스러워지고 격렬해진다. 그 관광버스의 휘청거리는 아줌마 군상들은 도회인들, 특히 글 줄 깨나 읽었다는 지식인들의 타작거리가 되어왔다. 저질 한국 아줌마문화의 표상 처럼. 그러나 그들의 휴식 시간은 너무나 짧다. 그러니 여유 부리고 고상하게 즐길 심적,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러니 출발하기 무섭게 먹기도 해야하고 마시기도 해야하고 춤도 춰야 하고 노래도 해야하고, 구경도 해야하고.... 그 많은 것들을 불과 몇 시간 안에 해치워야 한다. 일년에 하루 이틀 소풍조차도 일처럼 속도전으로 뚝딱 해치워야하는 그들의 뒷 사정도 헤아려 줘야 한다. 빨리 취하기 위해 '폭탄주'라는 기발한 발명품을 개발한 나라요 백성들이다.

 

인간의 일상 생활 시간을 나누어보면, 크게 노동시간, 생활필수시간, 여가시간으로 구분될 수 있을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은 하루에 8시간 42분 일하며, 7시간 47분 잠자고, 하루 세끼와 간식을 포함해 1시간 33분을 먹는 시간에 쓰며, 매일 2시간 13분 동안 텔레비젼을 본다.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하는 사람도 주변엔 차고 넘친다. 모처럼의 휴일이나 휴가는 방콕(방에 콕 들어박혀 있는 것)이나 방글라데시(방안을 딩굴딩굴 구르며 시간을 보내는 것)를 간다. 집에서 그 간 밀린 잠이나 늘어지게 잔다든지 야외에 나가면서도 포카나 화투를 챙겨나가 하루 종일 열심히 팔 운동(?)도 하고 동(서)양화(?)도 즐긴다. 음주로 화투로 잠으로 ... 날려버리는 아까운 휴식 시간들. 우리가 언제 제대로 놀아본 적이 있었던가?

 

휴일이나 휴가 보다는 년말에 돈으로 받는 년월차휴가수당이 더욱 고맙지 않았던가? 남들이 돈 쓰고 노는 시간에 나는 돈버니 안 써서 좋고 벌어서 좋고 '꿩 먹고 알 먹고'가 아니냐고 위안을 삼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즐길 여유가 어디 있었던가? '한 손에 삽을 들고 한 손에 총을 들고...' 그것이 우리의 구호가 아니었던가? 싸우 듯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해서 이제 우리도 이만큼 살게 되었다. 홍콩에 놀러간 한국 여행객이 중국식당에 들어가 주문을 받으라 했더니 주인이 손을 내젓더란다. 한국에서 중국집을 하며 “빨리빨리” 재촉하는 소리가 싫어 이민을 갔는데 여기 까지 따라와서 또 '빨리빠리냐'는 얘기다. 오늘도 휴대폰에 `8282'를 찍으며 숨가쁘게 달려가는 '대 - 한민국!'이다.

 

☆ 현저한 소비(Conspicuous Consumption)와 현저한 레저(Conspicuous Leisure) 사람들은 자신의 고귀한 신분을 드러내 보이고 싶어한다. 소비와 관련해서 사람들은 어떻게 자신을 과시하려고 하는가? Thorstein Veblen의 (1953) '레저계급이론'은 그 것을 잘 설명해준다. 사람들이 신분 구조상 그들의 위치를 의사 소통하는 두 가지 다른 방식이 있다. 그 첫째가< 현저한 소비>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은 신분 과시를 위해 값비싼 것을 대량으로 구입하는 것을 보여주기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 1980년대에 겪었던 것이다. 신분이 돈에 의해 결정되는 모든 시대의 모든 계층의 사람들은 돈을 쓰는 방식을 통해 신분을 나타내고자 했다. 그리하여 검소함을 강요하던 시대에 눈에 띄는 소비는 신분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었다. Veblen의 이론틀 속에서 보다 중요한 개념은 <현저한 레져>다. Veblen은 처음 단계의 소비가 언제나 사회적 신분에 대한 눈에 띄는 지표는 아니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대신 그는 '현저한 레져'라고 명명한 두 번째 측면에 의한 신분상의 의사소통에 주목했다. 사회적 지위라는 것은 '돈을 많이 가지고 있어서 돈 버는 행위를 그만 둘 수 있는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 때 신분의 지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중에 골프 여행을 떠나는 부유한 전문직 사람들이 그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돈을 벌어야하는 시간에 레져를 즐긴다는 것이 비싼 상품을 구매하는 것 보다 확실한 사회적 신분을 드러내는 지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Vablen의 현저한 레저의 개념은 이러한 단순한 상황 이상으로 확장된다. 사회적 지위에 대한 지표로써 레저는 그것이 그저 써버리는 소비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자기계발의 기회로써 제공될 때 가장 유용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 자기계발 활동은 레저 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에도 소득으로 남는다. 그러므로 사회적 지표로써의 가치는 더욱 두드러진다. 따라서, Veblen이 말하는 레져의 이런 후발 효과는 바로 사회적 지위의 '2차적 지표'라 불리는 것이다. Vablen의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누구나 남과 다르게 보이고 싶어하고 그 남과 구분 짓기 위해서 현저한 소비와 현저한 레져를 수단으로 이용한다. 초기 단계에서는 현저한 소비가 신분 과시의 지표가 되지마는 보다 발전하고 나면 현저한 레져가 보다 확실한 신분과시의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 집은 선풍기가 없었다. 드디어 작년에 선풍기를 샀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집 둘째 녀석이 친구 집에 가서 우리도 선풍기를 샀다고 자랑을 하고 왔다. 우리가 정말 쉴 여유가 없었던 휴가 보다는 돈으로 수당을 받는 게 더 절실했던 시대에는 우리도 현저한 소비가 신분과시의 수단일 수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가정환경조사서에 집에 텔레비젼이나 냉장고가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으면 그 아이 아버지는 거의 육성회장을 맡아야 했다. 지금은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다. 고화질 텔레비젼이나 홈 씨어터 구매 정도도 신분과시 효과가 별로 없다. 우리도 현저한 소비 보다는 현저한 레져가 보다 강력한 신분과시 수단이 되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 노는 것과 쉬는 것의 차이 그리고 느림의 미학 "너 행복하니?"라는 한 이동통신회사 광고 카피를 들으면 온몸에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던 어느 학생이 기억난다. 오늘날은 속도가 효율성을 좌우하는 시대다. 모바일, 인터넷, 고화질텔레비젼, 위성방송, DVD ... 등 꿈의 디지털 혁명이 지금 우리의 생활을 엄청나게 바꾸어 놓고 있다. 그러나 그것들 때문에 인간은 과거 보다 더 행복해졌는가? 그런 문명의 발전만큼 사람들은 더욱 바빠지고 더욱 고독해져왔다. 모든 사람은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제일기획에서 조사한 것을 보면 '여가를 충분히 즐기는 것이 인생의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65%나 된다. 이런 경향은 수입 대비 여가생활에 대한 의식에서도 나타나, 수입을 위해 일을 더 하기 보다는 여가시간을 더 갖고 싶다고 한 사람이 41%(부정 22%)나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의 2명중 1명은 여가 시간이 충분치 않다고 여기고 있다. 생활수준이 낮을수록 여가시간이 불충분하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 높았다. 휴가를 가족과 함께 보낸다는 사람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우리나라도 코쿠닝 트랜드에 따른 신가족주의 경향이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시간만 있으면 그냥 쉬기보다는 취미활동이나 운동을 하는 편"이라는 사람은 겨우 28%이다. 여유있는 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사람의 비율이 아직 많지는 않다. 여가 (Leisure)라고 하면 '논다', '노동으로부터 벗어나 있다'는 생각이 언뜻 든다. 91년 문화부와 한국 문화예술진흥원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하루 평균 여가시간이 3시간 이상이 된다는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30.8%, 이중 대부분은 TV를 시청하거나(21.7%), 집에서 쉬거나(16.3%), 일의 연장으로(9.7%), 혹은 가사·육아(8.2%)로 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노동으로부터 벗어난 시간이지(Freetime) 여가(Leisure)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 쫓기는 사람처럼 여름휴가를 떠나야 하는가? 왜 문화적 향유라는 미명 아래 미술관과 박물관을 휩쓸고 다녀야 하는가? 파스칼은 말했다.“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가지, 고요한 방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데서 비롯한다”. 인생이라는 먼 길 가는 우리. 제대로 잘 가고 있는 지 한번쯤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올해로 4회를 맞는 2002 광주 비엔날레의 주제는 '멈춤' : P A U S E , 止 …였다. 미술인 입장에서는 숨가쁜 현대미술의 길을 점검해 보고,관람객 편에서는 정신없는 자신들의 인생 길을 되돌아보게 만든다는 것이 그 취지였다. '멈춤'은 시간과 공간이 정지하고, 몸이 쉬고, 모든 속도가 멈추는 것이다. 그러나 그 멈춤은 다른 액션을 전제하고 있기에 거기에는 희망이 있다. 멈춤은 20세기 우리가 숨가쁘게 달려온 속도에 대한 잠시의 제어이며, 거기에는 우리의 현실에 대한 반성과 비판이 스며있다. 그래서 `멈춤, 새로운 시작입니다'가 공식 표어였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속도가 승부의 결정 요인이 되었다. 빌 게이츠의 최신 저작에서도 오늘날 사업의 성공은 '생각의 속도'라고 강조한 바 있다.

 

다른 사람보다 빨리 생각하고 행동하여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에서 '느림의 미학'이 뜨는 것은 분명히 재미있는 현상이다. 몇 해전 밀란 쿤데라의 '느림'이라는 책이 화제가 되었다. 최근에는 느림의 미학과 지혜를 알리는 책들이 여러 권 출간되었다. '느리게 사는 즐거움'(어니 젤린스키 지음, 물푸레)을 비롯해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상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동문선), 소설가 한 수산의 '단순하게 조금 느리게'(해냄), 찰스 핸디의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생각의나무), 구 본형의 '떠남과 만남'(생각의나무) 등이 그런 류의 책들이다. 스피드의 시대일수록 느리게 살아라. 이들은 '어리석은 토끼보다 지혜로운 거북이가 돼라'는 얘기를 나직하게 들려준다.

 

☆ 일요일은 한 주의 마지막 날인가? 첫날인가? 우리에게 일요일은 일주일의 마지막 날이었다. 토요일과 일요일을 '주말'이라고 말하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은 쉬었다. 열심히 엿세를 일했으니 하루는 논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안식일이다. 그러나 휴양이나 휴식을 의미하는 오락을 recreation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모든 달력에서 일요일은 주의 맨 앞 칸에 표기되어있다. 휴식은 재창조를 위한 출발이다. 머리가 딱딱하게 기부스하고 있는 상태에서는 그리고 정신이 풀질한 칼라처럼 빳빳이 서있는 상태에서는 아이디어는 나오지 않는다. 제일기획이 실시하고 있는 破卵(알깨기)연수도 그런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주말은 더 이상 주말일 수 없다. 보다 활기찬 한 주를 위한 준비운동으로서, 시작으로서의 휴일이어야 한다. 노는 것은 소비적이지만 쉬는 것(휴식)은 생산적인 것이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노는 날이 아니다. 쉬는 날이어야 한다. "또 한주일을 위한 심호흡" 어느 캐쥬얼 옷 광고 헤드라인 처럼 이제 일요일은 한 주의 첫째 날로 돌아와야 한다. 광고 크리에이터는 일반 대중 보다 반보 정도만 앞서 가야한다. 이상의 <오감도> 처럼 대중들 보다 너무 앞서 가면 그들의 공감을 얻어내기 어렵다. 광고는 예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발자취 앞에서 대중을 끌고 가는 광고, 그러기 위해서는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는 광고 크리에이터의 안테나는 늘 작동하고 있어야 한다. 주5일근무제의 확산은 전세계적인 코쿠닝 트랜드와 맞물리면서 그 동안 너무나 오래 동안 집을 떠나 있던 가장을 집으로 가족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리고 여행, 레져, 취미활동, 자기계발....의 기회를 증가시켜 줄 것이다.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나 새로운 생활방식의 제안을 통해 광고는 우리 사회의 향도가 되어야 한다.

 

☆ 노는 것과 쉬는 것의 차이를 그리고 '느리게 산다는 것'의 미학을 가르쳐야 한다. 그 동안 우리 한국인들은 너무 숨가쁘게 살아왔다. 현대가 속도가 좌우하는 시대인데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가 또 격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었다. 한국현대사, 그 격변의 한 시대를 살아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신이 없다. 그리고 피곤하다. 90년 JR동해의 '일본을 쉬게 하자' 캠페인이 일본인들의 여가문화를 바꾸어 놓았다. 이제 한국을 쉬게 할 때다. 그리고 잠시 멈추고 우리 자신을 돌아 보아야할 때다. 주5일근무제는 몸도 마음도 바빴던 우리에게 숨 돌릴 수 있는 여유를 줄 것이다. 우리 민족은 음주가무를 즐기는 잘 노는 민족이었다지만 최근 몇 십년 동안 정신없이 뛰어오느라 한국인들은 노는 방법도 잊어버렸다. 그래서 어쩌다 얻은 천금같은 휴가도 화투로 음주로 밀린 잠으로 대단히 소비적으로 허망하게 날려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제 광고는 그들에게 소비적인 노는 것이 아니라 생산적인 쉬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속도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 '느림의 미학'을 가르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