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한재 2007. 4. 9. 01:54

동쪽나라 화개동은

병 속의 딴 세계여서

신선이 옥침을 베니

문득 천년이 흘렀네

 

일만 골짜기엔 뇌성이 울리고

일천 봉우리는 비 맞아 새롭다

산승은 세월을 까맣게 잊어서

오직 풀잎으로 봄을 기억한다.

 

비 온 뒤의 청대 숲 빛깔도 좋아

흰 구름 사이사이 옮아 앉으며

고요로이 나를 잊는 경지에 드니

솔바람도 베개 위로 불어오누나.

 

봄이 오면 꽃들은 땅 위에 가득

가을 가면 단풍이 하늘에 내려

지극한 도리는 문자 속을 떠나

원래대로 눈 앞에 여여히 있네.

 

시냇물에 밝은 달 새로 돋는 곳

솔바람도 불지 않는 고요한 때에

소쩍새 우는 소리 귀에 들려오니

그윽한 멋과 맛을 저절로 알겠다.

 

산중에 사는 흥취 말은 들었겠지만

그 뉘라서 이 기틀을 알고 있으랴?

욕심 없는 마음으로 달빛을 바라보며

묵묵히 홀로 앉아 세상살이 잊노니.

 

진리의 지경이야 뭐 말할 것 있나

강물 맑아 달 그림자 비쳐 드는데

바람만 쉴 새 없이 골짜기서 불어와

단풍닢 떨어져 가을 산만 비었네

 

노송 위에 청라넝쿨 얽히어 살고

시냇물 가운데론 밝은 달 흐른다

절벽 사이 폭포 소리 웅장도 하니

골골마다 휘날리는 하얀 물보라여

 

(고운 최 치원의 화개동시)

 

쌍계사가 자리한 화개동천은 나의 까마득한 할아버지인 孤雲 선생의 발자취가 남아있는 곳이다. 쌍계사 대웅전 앞마당에 서있는 진감국사의 대공영탑비의 비문을 짓고 썼을 뿐만 아니라 쌍계사 입구 바위의 <雙溪> <石門>이라 새긴 것, 청학동 계곡에 새긴 <喚鶴臺>나 삼신동 마을의 <三神洞> 물 속 바위의 <洗耳岩>이라 새긴 것들이 다 그의 손결이다. 옥천사였던 이 절이 지금의 雙溪寺라는 이름을 얻은 것도 헌강왕 시절에 고운이 그의 호 처럼 외로운 구름으로 이 화개동천에 머물면서의 일이니 고운 선생과는 참으로 인연이 깊은 절이다. 그런 인연으로 옛날에는 선생의 초상화인 영정이 이 절 봉래각에 안치되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