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의 단상

[스크랩] 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소한재 2007. 5. 22. 13:51

곡성을 흐르는 섬진강을 따라 이런 초정들이 많이 서있습니다. 음식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잠시 쉬어가기에 매우 좋은 분위기있는 쉼터입니다. 아내와 둘째 놈이 폼을 잡고 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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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 창밖으로 폭포 처럼 쏟아지는 가을 햇살의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성당 미사에 참석해야 한다는 아내를 그리고 친구와 놀기러 했다는 둘째 녀석을 꼬셔서 집을 나선다. 아내의 믿음과 아들의 우정을 팔아 나선 가을맞이길. 섬진강의 가을을 만나러 곡성의 코스모스길을 달린다. 도로 양옆에 늘어서 가을 바람에 살랑이는 코스모스의 퍼레이드는 마치 나의 가을 여행을 환영나온 인파가 도열해 손을 흔들어 맞는 것 같다.

 

섬진강 강변을 따라 지어 놓은 초정들... 강이 내려다 보이는 초정 하나에 올라 잠시 쉬어간다. 구불구불 또 한 구비를 돌아온 강이 해잘대면서 우리가 앉은 초정 앞을 지나가고 있다. 김 용택이 <흐느끼는 강>이라했던 바로 그 강이다. 고기 비늘 처럼 반짝이는 햇살... 물 위에 반사된 가을 햇살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빨갛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들... 기분 좋게 옷소매를 흔들다 가는 바람... 아, 가을이다. 눈 가는 데 마다 가을이 빨갛게 익고 있다. 대나무를 깔아놓은 마루에 누으니 하나 가득 가슴에 안겨오는 하늘... 누구는 하얀 손수건을 던지면 금방이라도 파란 물이 배일 것 같다고 했던 바로 그 하늘이다. 정말 구름 한 점이 없다.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루황.... 왜 저런 하늘을 두고 옛사람들은 검다고 했을까?

 

손을 뻗으면 닿을 듯 초정 주변은 온통밤나무 밭이다. 밤은 이미 다 땋는데 까치밥인지 미처 덜 익어서 버려둔 것인지 몇 개의 밤 송이가 알밤을 가득 문 입을 벌리고 있다. 대나무로 때리니 후두득 가을이 떨어진다. 알밤이다. 가시에 찔리면서도 알밤을 꺼내는 재미에 아이도 즐거워한다.

 

2인용 자전거를 빌려서 호젓한 강변길을 달린다. 아이 한번, 아내 한번.... 머리카락을 빗질하는 가을 바람이 참으로 상쾌하다. 아이는 처음 타는 자전거의 재미에 아내는 30년 만에 처음 타보는 자전거 타기에 금방 푹 빠져버렸다.

 

동악산 청계동 계곡. 너럭바위와 맑은 물... 씻은 듯 말간 바위에 바닥 까지 들여다 보이는 마알간 물이다. 그 물 위에 비친 산빛도 온통 가을색이다. 청계동... 옛사람들이 붙인 이름만 들어도 계곡의 아름다움이 한 눈에 보이지 않는가? 한모퉁이를 돌 때 마다 이름 그대로 선녀탕이다. 조오-기까지만, 조오기 까지만... 그러다 보니 어느새 폭포가 막아서면서 계곡은 끝이다.  나의 비장처 목록에 청계동 계곡 하나가 늘었다.

 

귀로에 들린 함허정과 군지촌정사. 장흥의 동백정과 함께 내가 무척 좋아하는 정자다. 한뼘 남은 햇살이 황금빛 들녘에 그 빛을 더하고 강가에 앉은 정자마저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정자 마루에 앉아 해넘이를 본다. 아내의 얼굴도 빠알갛게 물들었다. 몽몽몽중몽... 그야말로 깨도깨도 또 꿈이겠지마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요만한 정자 하나 갖을 수 있었으면.... 그런 턱없는 꿈 때문에 나의 가을은 더욱 아름답다.

 

그냥 속절 없이 흘러가는 저 물도 아깝고, 지천에 널린 저 바위도 아깝고, 머리 카락을 빗질하고 사라지는 바람도 아깝고, 눈부시게 밝은 저 햇살도 아깝고.... 찾는 이가 별로 없어 너무나 고즈녁한 정자도 아깝고... 모든 것은 저 강물 처럼 흘러흘러 가는 것. 강물도 흐르고 사람도 흐르고... 아까우면 뭘하나? 어차피 우리네 인생도 깨고나면 허망한 일장춘몽이 아니던가?

 

 

마지막 넘어가는 햇살이 온산을 황금빛으로 물들여서 한 커트 찍었는데 사진으로는 그 느낌이 반에 반도 안살았네요. 강가의 프라다나스도 훨씬 단풍이 들었던데....

 

제가 매우 좋아하는 함허정입니다. 시멘트 전신주와 스텐레스 안내판만 없었으면 훨씬 더 좋았을텐데... 이 정자 마루에 서면 섬진강과 너른 옥과 들이 발아래 펼쳐집니다.

 

 

황금빛 노을을 맞으며 함허정 마루에 앉았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요만한 정자 하나 갖을 수 있었으면... 꿈이겠지요?

출처 : 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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