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의 단상

아호의 정치 vs 이니셜의 정치

소한재 2008. 12. 8. 23:11

옛날에는 우편 배달부가 아침에 듣는 까치소리처럼 반가웠는데 요즈음의 우체부는 그런 환영을 받지 못하는 듯 하다. 학수고대하던 반가운 소식 보다는 십상은 반갑잖은 고지서나 상업성 우편물을 가져다주기 때문일 것이다. 요즈음 일반화된 E-메일은 사정이 훨씬 심각해 열어보기가 겁난다. 하루에도 수십통씩 쓰레기 메일이 쏫아진다. 옛날 우편함을 열어보던 설레임은 아득한 전설일 뿐이다. 그런 쓰레기 메일 속에서 며칠 전 고건 전 총리가 쓴 <우민(又民, 于民)의 의미를 새롭게 마음에 새기며> 라는 편지글이 마음에 와 닿았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관습상 고위관리를 지낸 자신을 주변의 사람들이 이름을 부르기 어려워하기도 하고 흔히들 과거의 공직 명을 써서 그 사람을 지칭하기도 하나 소임을 떠난 뒤까지 ‘아무개 (전)시장, 아무개 (전)총리’라고 부르고 불리는 게 어색해 보이기도 해서 모두가 편히 부를 수 있는 호를 하나 가져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에도 불구하고 선친이 살아 계시는 동안은 호를 갖기가 겸연쩍어 미루고 있었는데 얼마 전 다산연구소 분들이 호를 갖기를 권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가 목민관으로서 일생의 표상으로 흠모하는 茶山선생과 그 사상을 연구하는 모임의 분들이 권하시는 것이어서 그들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약간 가미해서 ‘우민’으로 하되, 한자 표기는 ‘또 우(又)’ 와 ‘어조사 우(于’)의 두 가지 가운데에 하나를 고르기로 했다.


"또 우자 `우민(又民)'은 `또다시 민초(民草)'라는 뜻으로 부름을 받아 공직에 나갔다가 소임을 다하면 물러나 다시 민초의 자리로 표표하게 돌아간다는 뜻"이라면서 "일곱 번의 공직과 민간인 신분을 왕복했던 행정가로서의 자신의 삶을 보여주는 것이면서 백성 곧 국민이 종착점이자 근본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어 마음에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조사 우의 `우민(于民) 역시 `민초로부터, 민초와 함께, 민초를 향해'라는 뜻이어서 자신이 한평생 지표로 삼아온, `지성이면 국민도 감동한다'라는 지성감민(至誠感民)'의 좌우명과 일맥상통한다"며 두 가지 `우민' 가운데 어느 한 가지를 쉽게 선택하기 어려웠던 사정을 설명하고 있다. 그 2개의 `우민' 중 어느 쪽으로 택할지를 정하기 위해 의견을 물어본 결과 1천여명이 의견을 보내줬으며 또우 자 `우민'이 약간 우세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하나의 우민은 다른 우민을 전제로 하고 있어 이 둘은 나눌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편의상 자신으로서는 또 우자 우민으로 표기를 하겠으나 두 우민을 구분하지 않겠다"며 두 가지 `우민'을 함께 혼용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여러분들은 어떤 표기를 하든지 편하신 대로 쓰셔도 좋다"면서 " 저는 이 두 `버전'의 우민에 함축돼 있는 의미를 항상 음미하겠다"는 말로 끝을 맺고 있었다. 호를 짓는 것이 온고라면 네티즌들에게 의견을 물어본 것이 지신이 아니겠냐는 그의 조크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문인이나 화가, 학자들이 본명 외에 따로 지어 부르는 이름을 아호(雅號)라 하며 이를 줄여 호라 한다. 호와는 달리 요즘의 성인식에 해당하는 과거의 관례(冠禮) 때 지어 준 이름이 자다.


호나 자의 사용은 본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서로의 품위와 인격을 존중하며 예우하는 아름다운 풍습의 하나다. 서로 호를 불러주는 사이라면 나이를 따지지 않고 친밀히 사귀는 '망년지교(忘年之交)'이다.


호는 스승이나 존경하는 분이 지어주기도 하고, 자신이 짓기도 한다. 지을 때는 보통은 네 가지의 작법을 따른다. 본인과 인연이 있는 지명을 따거나(所處以號), 지향하는 경지나 목표를 담거나(所志以號),자신의 처지를 빗대거나(所遇以號 ), 좋아하는 사물을 표현한 경우(所蓄以號 )를 말한다. 그래서 호를 통해서 그 사람이 갖는 품격과 이미지, 성향 등을 가늠하기도 한다.


5.16 이전에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은 호로 불리웠다. 雩南(이승만), 白凡(김 구) 夢陽(여 운형), 海公(신 익희), 維石(조 병옥), 竹山(조 봉암) 海葦(윤보선)....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JP, YS, DJ... 과 같이 영문 이니셜이 호를 대신하게 되었다.     


알고 보면 오늘날의 정치인들 또한 대부분 호를 가지고 있다. 최 규하 전 대통령의 호는 玄石,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호는 '後廣' 김영삼 전 대통령의 호는 '巨山' 전두환 전 대통령의 호는 日海, 김 종필씨의 호는 '雲庭' 이회창씨의 호는 '徑史'.....다. 지을 때는 심오한 뜻을 담고 나름대로 고심해서 지었을터이나 본인들도 적극적으로 쓰지도 않고 언론도 그들을 호로 불러주지도 않다 보니 글자 그대로 유명무실이다.


미국의 하원의원들은 개원식 때 가족들과 함께 선서식에 참석한다. 가족들과 함께 의사당에 나와 선서를 하는 것은 먼저 가족들 앞에서 나라에 봉사할 것을 다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아기를 안고 신성한 의사당에 나온 의원들의 모습은 참으로 신선할 것 같다.


패거리정치, 돈정치, 막말 정치.... 구태 정치에 신물이 난 국민들이 국회의원의 80%를 갈아치웠는데도 17대 국회 또한 16대 국회 보다 조금도 나아진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회기가 끝나고도 모자라 임시국회를 열었는데도 12월 31일 마지막 날 자정이 다되도록 새해 예산안이나 파병 동의안 하나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욕설과 고성만 의사당에 하나 가득하다. 생활고에 허덕이는 국민들이 거리에 넘치는데 할복을 해도 시원찮을 정치인들은 오늘도 네탓 내탓만 하고 있다. 누구 하나 내 탓이라고 말하는 이가 없다. 다들 ‘국민을 위해서’라는데 그들이 말하는 국민에 대부분의 이 땅의 민초들은 포함되지 않는 것만 같다.


그래도 옛날의 정치는 시어처럼 낭만이나 품격이 있었는데 요즈음 정치는 시정잡배들의 그것처럼 오직 살벌하기만 하다. 오늘날의 정치부재는 호로 불리우던 정치인의 이름이 영문 이니셜로 바뀌고 난 다음의 일인 것 같다. 호를 지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간다면 이 나라 정치가 지금 같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