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집을 찾아가는 길

[스크랩] 선암서원(펌)

소한재 2009. 9. 4. 10:05

 

소요대지(逍遙臺志)

이곳은 곧 선조 소요당선생이 머무시던 유서 깊은 곳이다. 선생께서는 中廟朝에 태어나시어 유학으로

현량과에 발탁되어 누차 부름을 받았으나 나가시지 않으시고 운문지하에 정자를 지어시고 산수가 심히

아름다운 이곳을 소요대(逍遙臺)라 이름하여 조용한 가운데 스스로의 뜻을 펴셨다.

"소요"라 함은 속세를 떠나 넓고 아득한 곳을 거닌다는 뜻 뿐만 아니라 유유히 즐기는 가운데

心性體用하고 鳶飛魚躍하는 높은 경지가 담겨져 있고 자연과 부드럽게 和하여 氣를 기르신다는

심오한 뜻이 담겨져 있다.

 

 

仙巖書院

선암서원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9호로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신지1리 335번지에 소재한다.

이 건물은 삼족당(三足堂) 김대유,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의 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원래 매전면 동산동 운수정에서 향현사로 건립되었으나 조선 선조10년(1577)에 군수 황응규가

지금의 위치로 옮기고 선암서원으로 개칭하였다.

고종 15년(1878)에 다시 중건되고 선암서당으로 고쳐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건물은 상류주택에 서당이 부가된 형식으로 강당인 소요당, 정침(正寢) 사랑채인 득월정(得月亭),

그리고 좌우의 부속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서원의 정침은 정면 5칸, 측면 1칸의 규모이고, 사랑채인 득월정은 정면 4칸, 측면 1칸의 소규모 건물로

정침과는 토담으로 구분되어 있다.

득월정은 온돌방 2칸, 대청 2칸의 단순한 평면 구성을 하고 있는데 가구와 처마 구성에 주목할 만한

기법이 보인다.

소요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인데 법식이나 기법, 양식에서 다른 건물과는 많은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좌우 퇴카나에 전퇴를 둔 방이 각 한칸식 있는데 이 방을 꾸민 기둥이 고주가 아닌 평주로 구성되어 있어

건물의 평면구성에 있어서 독특한 양식을 보여준다.

 

 

소요당 선암서당은 정면5칸 측면2칸의 건물양식이다.

 

궁궐이나 사찰에서 볼 수 있는 공포 양식의 건물이다.

 

 

 

 

 

 

장판각(藏板閣)

 

배자예부운략 판목(排字禮部韻略 板木)  /  보물 제 917 호

이 판목은 선암서원에 소장된 예부운략의 책판이다.

조선 광해군 7년(1615)에 청도 사람이었던 박경전, 박경윤 형제가 충북 영동에서 같은 본을 구해

복각한 만력판 12매와 숙종 5년(1679) 박동부에 의해 다시 복각된 강희판 150매를 합해 162매인데

현존판목 수량은 152매이다. 크기는 세로 20.2cm, 가로 46.2cm, 두께 1.8cm이다.

「배자예부운략」은 시부를 지을 적에 운을 찾기 위하여 만든 자전으로 과거를 관장하는

주무부서인 예부의 명칭을 붙인 것이다.

이 예부운략은 현종에서 숙종 연간에 삼운통고가 보급되기까지 선비들의 필수자전으로 쓰여 왔던

책으로 이 판목은 매우 희귀한 판목에 속한다.

강희판은 만력판을 다시 복간한 것인데 한 장의 결손도 없이 고스란히 보존된 유일한 것으로

그 가치가 매우 크다. 강희판은 5권 2책을 간행되어 유포되었다.

이들 판목들은 조선조 서지학, 특히 판각연구 및 국어학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간주된다.

이 판목은 2005년부터 안동에 소재하는 한국국학진흥원 선암서원 판각실에 전시 보존되고 있다.

 

십사이사록 판목(十四義士錄 板木)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8호

이 판목은 임진왜란 때 청도 지방에서 의병활동을 건개하여 많은 공로를 세운 밀양박씨 문중의

14명에 관한 사실과 함께 의병 및 그들이 의병 활동 상을 기록한 「십사의사록」은 5권 2책의

목판본으로 고려 고종4년(1867) 후손 박성묵 등의 주관아래 각판 되었고 총 20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판목은 기존의 관선사료나 일반적으로 알려진 야승류에서 빠져 있는 임진왜란 당시 이 지역의

전투상황과 전쟁극복에 대한 구체적인 실상을 자세히 제시해 준 점에서 사료적으로 가지를 지닌다.

무엇보다도 이 판목은 14의사의 의병활동이 밀양박씨 일문이 총동원되어 수행되었고

청도 일대의 향토 방위에도 큰 공로가 있었다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서 밀양박씨 문중으로 하여금

자부심을 갖도록 하였다.

이 판목은 2005년부터 안동에 소재하는 한국국학진흥원 선암서원 판각실에 전시 보존되고 있다.

 

 

해동속소학 판목(海東續小學 板木) / 경북 유형문화재 제 208 호

이 판목은 조선 고종 21년( 1884)에 진계 박재형이 아동의 윤리교육을 위하여 지은 해동속소학의

책판이다. 「해동속소학」은 6권 2책이며 내,외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내편에는

입교(立敎), 명륜(明倫), 경신(敬身), 계고(稽古) 등이 외편에는 가언(嘉言), 선행(善行) 등이

수록되어 있다. 본서는 민족 주체성을 기반으로 사대를 버리고 자주적인 교육을 위해 생활속에서

실천하는 것을 교육목표로 만든 입문교과서이다. 인용된 서목(書目)은 삼국사기(三國史記)를

비롯하여 우리나라 선현이 사적을 담은 기설류(記設類)와 문집에 이르기까지 60여종에 이른다.

이 판목은 2005년부터 안동에 소재하는 한국국학진흥원 선암서원 판각실에 전시 보존되고 있다.

 

 장판각에는 위의 판각들이 있었는데 안동으로 옮기고 지금은 창살틈으로 본 것 등이 보관되어 있다.

 

토담이 가운데 쳐져 있는 고택을 보기 쉽지 않다.

 

 

 

 

 굴뚝이 낮은 이유는 연기가 낮게 깔려 여름철에 모기나 벌레를 퇴치하기 위한 조상들의 슬기입니다.

 

 

주변에는 큰 미루나무가 많다.

 

동창천 건너에 있는 유원지인데 예전 어릴 때는 저기를 '똥내' 라고 불렀다.

 

 

지금도 기억 나는 것은 설날에 갓 쓰신 어르신들께 세배드리면 족보를 따지시고 족보를 알려주시고

훈계에 싫어 가기가 싫었다. 30년 넘게 찾은 뜰에 큰 배롱나무있는 줄은 몰랐다. 

내가 자란 동네에 보물이 있다는 것에 긍지도 살짝 가져집니다.

오늘 마당에 해미석 포석작업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출처 : 선암서원(펌)
글쓴이 : 소한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