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변정담(爐邊情談)

눈 내리는 숲에서

소한재 2010. 12. 30. 22:04

하루 종일 눈이 내렸습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 자꾸 불러냅니다.

 

두툼한 모자에 장갑을 끼고 집을 나섭니다. 사는 집 바로 앞이 산입니다.

 

눈이 퍼붓는 숲 가에 가만히 혼자 서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눈 내리는 저녁, 호숫가에 홀로 서서>.. 그 시 속의 주인공 처럼 그렇게 눈이 내리는 숲 속에 나도 한 그루의 나무 처럼 서있습니다.

 

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 나무들을 보고 있노라니 지금은 떠나고 없어서 더욱 그리운 사람, 법정 스님 생각도 났습니다.

 

감동으로 읽었던 그의 수필, <설해목> 생각이 났습니다.

 

함박 눈을 뒤집어 쓰고 있는 숲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저절로 아~ 아~ 탄성이 터져나옵니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때로는 그의 고통이 나의 즐거움이 될 수도 있구나.

 

이 외수 선생의 말 처럼 내가 저 나무가 되어보면 저 나무에 입을 달아주고 귀를 달아주면? 저 나무들은 지금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서있는 고통의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너무나 무겁지마는 <무겁다>. <힘 들다>고 말할 입도 저 무거운 눈을 털어낼 손이나 팔을 나무는 갖지 못했습니다.

 

저 나무들에게 입이 있다면 눈 내리는 이 숲은 이렇게 고요할 수 있을까? 오히려 아비규환의 신음 소리로 너무나 시끄럽지 않을까요?

 

남의 고통이 나의 즐거움이 되는 것이 어디 눈 내리는 숲 뿐이겠습니까? 인간 세상은 늘 너의 슬픔이 나의 기쁨이 되지 않던가요. 

 

시끄럽게 울어대던 그 많은 새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이 숲의 주인들은 지금 어디서 이 눈을 맞고 있을까요?

그리고 저 눈 밭을 가는 저 사람은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언젠가는 이 눈도 그칠 것이고 팔이 찢어지는 저 나무의 고통도 사라지겠지요?

눈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은 어쩌면 너무나 그 생명이 짧기 때문은 아닐까요?

 

떡 가루 처럼 소리 없이 내려 쌓이는 눈 속에서 태고적 음향을 듣습니다.

고요 속에 잠겨있는 도시를 바라봅니다.

 

군인이었던 아들은 이 눈을 <악마의 비듬>이라고 했습니다.

끝도 없이 치워야하는 노동의 대상일 뿐이었던 그에게 눈은 정말 악마의 비듬이었을 겁니다.

 

 

설해목(雪害木) 

 

 

해가 저문 어느날, 오막살이 토굴에 사는 노승 앞에 더벅머리 학생이 하나 찾아왔다.

아버지가 써 준 편지를 꺼내면서 그는 사뭇 불안한 표정이었다.

사연인즉, 이 망나니를 학교에서고 집에서고 더 이상 손댈 수 없으니,

스님이 알아서 사람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노승과 그의 아버지는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편지를 보고 난 노승은 아무런 말도 없이 몸소 후원에 나가 늦은 저녁을 지어 왔다.

저녁을 먹인 뒤 발을 씻으라고 대야에 가득 더운 물을 떠다 주었다.

이때 더벅머리의 눈에서는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아까부터 훈계가 있으리라 은근히 기다려지기까지 했지만

스님은 한 마디 말도 없이 시중만을 들어 주는데에 크게 감동한 것이다.

훈계라면 진저리가 났을 것이다.

그에게는 백천 마디 좋은 말보다는, 다사로운 손길이 그리웠던 것이다.

이제는 가고 안 계신 한 노사老師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게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노사의 모습이다.


산에서 살아보면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겨울철이면 나무 들이 많이 꺾이게 된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면 꺾이게 된다.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가볍고 하얀 눈에 꺾이고 마는 것이다.

 

깊은 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들이 꺾이는 메아리가 울려 올 때,

우리들은 깊은 잠을 이룰 수 없다.

 

정정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 앞에서 넘어지는 그 의미 때문 일까.

산은 한겨울이 지나면 앓고 난 얼굴처럼 수척하다.

사밧티의 온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던

살인귀 앙굴리말라를 귀의시킨 것은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신통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자비였다.

아무리 흉악무도한 살인귀라 할지라 도 차별없는

훈훈한 사랑 앞에서는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이다.


- 법정 스님의 <무소유>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