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재중 존재감
정환아
방학을 했는데..., 해가 바뀌었는데도 너는 집에 돌아올 줄을 모르는구나.
사실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떠난 날부터 너는 아주 집을 떠났다고 아버지는 생각한다.
방학을 했다고..., 휴가를 받았다고... 집에 와도 그건 잠시 부모님 댁에 다니러 오는 거지.
주민등록이, 주소가 아직 여기 있다고 네가 집에 있는 것은 아니지.
다 자란 새가 자신을 허공중에 던지는 그 아슬아슬한 최초의 비행을 통해
그렇게 둥지를 떠나듯이 자식들 또한 그렇게 집을 떠나 야생의 숲으로 돌아가는거지.
그런데 어느 날부터 욕실에 들어갈 때 마다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풍경이 하나 있었다.
지난 가을부터 구강세정기를 사서 욕실에 설치해서 쓰고 있는데
샤워 꼭지에 꽂아서 쓰는 노즐 4개가 들어있다. (요즈음 보통 한 가족이 4명이니까)
아버지꺼 하나, 어머니꺼 하나 그리고 기원이 꺼 하나. 3개를 꽂아 두었다.
언젠가부터 거기에 꽂힌 3개. 비어있는 한 칸이 자꾸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 비어있는 한 자리에서 너의 부재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 집에 이제 너는 없다는 너의 부재를 확인 시켜주는 정도가 아니라
언젠가 부터는 약간의 아픔으로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방학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너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올해가 지나고나면 어쩌면 또 한 칸이 비겠지...
그 때 달랑 두 개 남은 그 모양이 참으로 쓸쓸할 것 같다는 생각.
아버지가 어렸을 때, 식구 중에 누가 어디 멀리 가고 없는 날에도 어머니는 밥을 펐다.
“객지에서 밥이나 잘 먹고 다니는지..?”
“낯 설은 타향에서 잠이나 따뜻하게 자는지...?”
머 그런 마음에서 없는 식구의 밥 그릇을 제일 먼저 떠서 챙기는 것이었다.
안방 아랫목에는 언제나 주인 잃은 밥 그릇이 발끝에서 굴러 다녔다.
주인 잃은 밥은 그 다음날 다른 식구의 밥이 되지마는
어머니는 늘 지금 집에 없는 식구 중 누구를 위해 저녁 밥을 펐던 기억이 난다.
그는 지금 집에 없지마는 식구들 마음속에서 그는 항상 함께 있었다.
심지어는 죽고 없는 이를 위해서도 아침 저녁으로 밥을 올리던 상석이 당연했던 때라
집을 떠난 식구의 밥을 따로 푸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게 없었다.
안방 아랫목 이불 속에서 느껴지던 그 따뜻한 밥 그릇의 온기는
지금도 아버지의 마음을 데워주는 식지 않는 기적의 난로로 남아있다.
벽장을 이 잡듯이 뒤진 끝에 남은 노즐 한 개를 찾아내 그 빈 자리에 꽃았다.
금방 내 기분이 따뜻해졌다.
아버지는 구강 세정기 노즐 꽂이에서 너의 부재를 느낀다.
그러나 그 자리에 너의 노즐이 그렇게 나란히 꽂혀 있듯이
너는 우리 가족들 마음 속에 언제나 함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라.
너의 어머니 가슴 속에는 언제나 따뜻한 너의 밥 그릇이
이불에 쌓여 안방 아랫목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이 눈이 그치면 수은주는 다시 영하로 곤두박질 치겠지.
몸이 추운 것은 털옷으로 장갑으로 데울 수 있지마는
마음이 추운 것을 데울 수 있는 것은 36.5도 짜리 이 난로 뿐이다.
객지에서 마음이 추울 때면 우리 집 욕실에 있는 네 개의 노즐꽂이를 생각해 보렴.
거기 세 번째 칸에 나란히 꽂혀있는 에메랄드 빛 너의 노즐을 생각해보면
금방 언 너의 가슴이 따뜻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기원이가 외식을 하자고 하네
송정리 떡갈비 골목이 자꾸 부른다고 하네.
ㅎㅎㅎ
광주에서 아버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