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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한재에 담은 뜻은...
    소한재(笑閑齋)일기 2007. 3. 8. 04:06

    (거실 출입문 위에 걸려있는 安分蝸. 이 글씨는 창암 이 삼만의 절필이다.)

     

     

    늘 시골집에 당호를 새긴 편액을 하나 걸고 싶었다. 집앞에 배밭이 있다해서 농담으로 李花莊이라고 불러주는 친구도 있기는 하다. 그 평범한 시골집에 당호가 가당키나 하랴마는 당호라는 것이 꼭 큰 집에만 붙이라는 법은 없으니 언감생심 당호라는 것을 짓기는 했다. 그래서 약간은 고심 끝에 笑閑齋라는 이름을 지었다. 어찌 보면 너무 뻔한 듯해서 부끄럽기도 한데 그 유명한 이 백의 山中問答

    문여하사서벽산(問余何事棲碧山)   왜 푸른 산중에 사느냐고 물으니

    소이부답심자한(笑而不答心自閑)   말없이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니 마음이 저절로 한가롭다.
    도화유수묘연거(桃花流水杳然去)   복숭아꽃 흐르는 물따라 표표히 떠내려가니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   아하, 여기가 인간세상이 아니로구나.

    가운데 笑而不答心自閑에서 笑자와 閑자를 따와서 소한재로 지었다. 자연에 묻혀 그저 말없이 빙그레 웃으면 마음이 저절로 한가로운 집이고 싶은 나의 작은 소망을 담은 것이다.

    잘 쓰는 이를 찾아가 글을 받고 싶기는 하지마는 잘 아는 서예가도 없다. 또 설령 있어 받았다한들 막상 받고보니 내 마음에 쏙 들지 않으면 그 글씨를 버리기도 그렇고 마음에 들지도 않는 글씨를 새겨서 걸어두면 볼 때 마다 언짢을 것 같기도 하다. 해서 내 마음에 드는 글씨로 집자를 해서 서각하는 이에게 맡겨 볼까하는 궁리도 한 적이 있다. 그것도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새로 새기면 산뜻한 맛이야 있겠지만 이발관을 나설 때 처럼 분명 내 것이기는 하되 내 것 같지가 않고 생경할 것 같다. 세월의 때가 끼어야 제 멋이 날 것인데 그런 맛은 그만큼의 세월이 흐르지 않고서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 아닌가?

    골동품상을 뒤져보면 편액이 나온 것들이 몇 개는 있을 것이다. 그런 편액 가운데서 잘 쓰고 잘 새겼으며 그 뜻이 얼추 우리 집과 어울리면 그걸 사다 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어놓은 이름이야 살다가 나중에 새겨 걸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나오는 편액은 십중팔구 그 집은 사라지고 편액만 남은 것일테니 혹여 사연이 있는 편액이라면 그것 또한 덤이 아니겠는가?

    오늘 오후에 어디 회의에 가서 몇 마디 해주었더니 회의비라면서 빳빳한 현찰이 든 봉투를 하나 받았다. 쥐 뒷발에 소 잡히 듯 가끔 이런 일이 있는데 이런 돈이야말로 아내 몰래 꿀꺽할 수 있는 완벽한 비자금인 것이다. 이런 돈은 바로 해치우지 않으면 베 고이에 방귀 빠져나가 듯 언제 사라진 줄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동안 조성된 비자금으로 편액을 하나 사볼까 하는 마음에 시내 골동품상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몇 개 중에 耕石室, 木美亭 등이 글씨나 분위기가 괜찮았지만 우리집과는 그 뜻이 거리가 있어 결국 빈 손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하기야 첫 술에 어찌 배 부르랴? 당호를 거는 것이야 분초를 다툴 일도 아니다. 이 달에 못하면 다음 달에 하면 될 것이고 올해 못하면 내년에 하면 될 것이다. 그래도 이미 반은 걸린 셈이다. 시작이 반이니까.

    가만, 명찰에 이름을 새겨야 하거늘 내가 지금 주운 명찰 때문에 이름을 바꾸려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내가 그런가요?

     

    (후기) : 목원공방에서 구반 선생의 글씨와 서각을 본 일이 있는데 썩 마음에 들었다. 구반과는 소한재 다실에서 함께 차를 마신 인연도 있는 지라 당호를 써서 새겨까지 주기를 청했더니 선선히 그러겠노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벌써 두 해가 지나갔다. 만날 때 마다 그거 해드려야하는데... 하는 소리만 두어번 들었다. 나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 깝친다고 될 일이 아니니 기다릴 수 밖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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