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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노변정담(爐邊情談) 2007. 6. 30. 18:02
오늘 시내에 나가 차 전문점인 <茶生園>에 들렀다가 뜻하지 않은 찻 잔 하나를 얻었다. 낱개 잔들을 모아 놓은 곳에 이상하게 달랑 그 잔 하나만 있었다. 지금까지는 우리 부부가 함께 차 마실 때를 생각해 최소한 두 개씩 쌍으로 샀는데 그건 하나 뿐이니 산다면 하나를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갈사갈 금이 간 빙열문이 아름다운 잔이었다. 그런데 선명하고 짙은 금 선으로 봐서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차향을 머금었을 듯 했다. 손 때가 뭍은 듯한 그 느낌이 그리고 찰싹 손 안에 감겨오는 그 느낌이 오래 전 부터 내 손 안에서 놀던 것 인 양 정겨웠다. 계산을 위해 카운터로 가서 잔을 내려놓으니 그걸 본 주인 아주머니가 웃으면서 "이건 좀... " 말 끝을 흐린다.
"왜요? 안파는 건가요?"
"아니 안 파는 게 아니라... 이게 왜 거기 나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저희가 쓰던 것이 거든요."
"아, 그래요? 난 그 쓰던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사고 싶었는데..."
"그러면 제가 이 잔을 선생님게 선물 할께요. 호호.."
선물을 받는다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찻 잔 값이야 몇 푼 되지 않지마는 누구에겐가 마음의 배려를 받았다는 사실이 기분 좋게 한다. 집에 돌아오자말자 찻 잔을 선물 받은 이야기를 아내에게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아내는 점잖게 한 마디로 내 흥분에 찬 물을 끼얹어 버렸다.
"쯧쯧... 법정 스님은 찻 잔은 하나면 충분하다. 두 개만 되어도 이 잔으로 마실까? 저 잔으로 마실까? 근심이 생긴다고 하시던데... 찻 잔이 50개다 60개다면서 근심거리나 쌓고 있으니... 그건 차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네요."
허긴 의재 미술관에서 본 너무나 소박한 의재의 차 살림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기억이 새롭다. 의재 생전의 모습을 담은 사진에는 양은 주전자도 있었다. 차의 정신을 쫓아야 하는데 차의 맛이나 멋만 쫓고 있으니... 아내의 그 한 마디에 나는 한 마디도 뒷 말을 찾지 못했다. 오늘 따라 차 맛이 왜 이렇게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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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주)
읽어본 정환이가 중언부언이 심하다고 한번 고쳐 보겠단다.
고쳐서 보여주었는데 훨씬 좋아졌다. 길이 뿐만 아니라 내용도 손 볼 수 있었으면 금상첨화일텐데...
<茶生園>에 들렀다 뜻하지 않은 찻잔을 얻었다. 잔들을 모아 놓은 데 이상하게 달랑 그 잔 하나만 있었다. 지금까지는 우리 부부가 함께 차 마실 때를 생각해 쌍으로 샀는데 산다면 하나를 살 수 밖에 없다. 사갈사갈 빙열문이 아름다운 잔이다. 선명하고 짙은 금 선으로 봐 적잖은 세월 동안 차향을 머금은 듯 했다. 손 때 묻은 듯한 느낌이, 찰싹 손 안에 감겨오는 느낌이 내 손에서 놀던 것 인 양 정겹다. 카운터에 잔을 내려놓으니 주인 아주머니가 웃으며 말 끝을 흐린다. “이건 좀...”
"왜요? 안파는 건가요?""아니 안 파는 게 아니라... 이건 저희가 쓰던 것이 거든요."
"아, 그래요? 난 그 쓰던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사고 싶었는데..."
"그러면 제가 이 잔을 선생님께 선물 하지요. 호호.."
선물을 받는 것은 늘 기분 좋은 일이다. 찻잔 값이야 몇 푼 되련만 누군가에게 마음의 배려를 받았다는 사실이 나를 기분 좋게 한다. 집에 돌아오기 무섭게 선물 받은 이야기를 아내에게 자랑스레 늘어놓았다. 아내는 점잖은 한 마디로 내 흥분에 찬 물을 끼얹는다.
"쯧쯧... 법정 스님은 찻 잔은 하나면 충분하다. 두 개만 되어도 잔을 고르느라 근심이 생긴다 하시던데. 50개다 60개다 하며 근심거리나 쌓고 있으니... 그건 茶心이 아니지요."
허긴 의재 미술관에서 본 소박한 의재의 차 살림에 충격을 받은 기억이 새롭다. 사진 안 의재의 옆에는 양은 주전자도 보였다. 차의 정신을 좇아야 하는데 차의 맛이나 좇고 있으니... 아내의 한 마디에 나는 한 마디도 뒷 말을 찾지 못했다. 오늘 따라 차 맛이 쓰다.'노변정담(爐邊情談)'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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