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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여름 대청 마루가 보이는 뜨락에서'
    차 한잔의 단상 2005. 6. 7. 00:27

    강 연균 오픈 스튜디오
    '초여름 대청 마루가 보이는 뜨락에서'

     

    "...금남로 화실을 마감하고 제가 20여년 살았던 소태동 한옥으로 화실을 옮겨서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여름이 오는 길목에서 저의 집 뜰의 평상이나 마루에서 여러 선배 재현, 화우들을 모시고 그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그의 초대의 글 중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전시회를 다녀왔다. 지금 오픈 스튜디오를 열고 있는 화가 강 연균씨의 소태동 화실이 그 곳이다. 좋아하는 화가와 그림을 직접 만나는 즐거움도 적지 않은데 그 모두를 그의 창작의 산실에서 만난다는 것이 결코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다. 더구나 그 창작의 현장이란게 오래 동안 가보고 싶어했던 그의 소태동 한옥이어서 그 기쁨은 더욱 클 수 밖에 없었다. 그 집을 지금은 노랗게 빛이 바래버린 <뿌리 깊은 나무>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날 이후로 내게 그 곳은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화순의 어느 참봉댁을 뜯어와 지은 소태동 화실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살림집이었다. 제대로 지은 그의 한옥은 한마디로 눈맛이 나는 집이었다. 거기에다 그가 일일이 심은 나무며 석물들이며 하나하나가 제자리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그 운치 있는 집을 통째로 아뜨리에로 차지하고 싶은 마음에 아파트의 편리성을 팔아서 빼앗은(?) 것이다. 세월의 때가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인 그의 집은 구석구석이 정갈하고 아름다웠다. 지금은 주로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는 대청 마루와 큰 방에 그의 근작 수채화 작품 17점을 전시하고 있었다. 물감이나 화구들이 그대로 널려있었다. 말라버린 석류도, 아무렇게나 걸려있는 치자 열매도 그의 공간에서는 탁월한 장식품이요 설치 작품이었다. 대청 마루 끝에 걸려있는 몇 줄의 꽂감도 그랬다. 그가 배먹어 몇 개가 모자라는 마지막 줄에서는 빙그레 웃음이 나왔다.

     

    무등산 자락에 깃들어있는 그의 화실에는 5월의 녹음으로 가득했다. 사립문을 밀쳐내고 들어선 후원에는 생명의 빛깔과 생명의 소리로 가득했다. 뜰의 평상에 앉아 차 한잔을 얻어마시면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의 유년 시절이며 그의 가족 이야기며, 우리집(한옥) 사랑 이야기며, 그러고도 춘설헌 이야기며 오 지호 선생의 지산동 화실 이야기가 화제에 올라왔다 내려갔다. 그의 전라도 사투리에는 말 맛이 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한편의 수필처럼 잔잔한 즐거움이 있다. 그의 그림에서는 그리고 그의 한옥에서는 멋이 있다.

     

    내게 중고등학교 미술실 그림에서 맨처음으로 격조를 느끼게 해준 것도 그였다. 수채화는 서양적인 그림이면서도 절제하는 붓질이나 물과 물감의 번짐에서 우러나는 멋과 맛... 그의 수채화는 한국화와도 많이 닮아있다. <매화>, <봄눈>, <모란>.... 뜰앞 텃밭에 있는 매화나 산수유가 그대로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그의 생활 언저리를 담은 그런 소재들이 더욱 그런 느낌을 부채질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화실을 나서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의 모든 물건에는 주인이 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물건에는 제자리가 있다. 그리고 그 물건의 주인만이 제자리를 찾아줄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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