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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란다를 다실로 꾸미다살며 생각하며 2006. 4. 21. 15:04
우리나라 아파트에서 베란다는 베란다가 아니다.
보통은 창고다. 베란다가 창고가 아닌데도 보통은 창고 처럼 쓰인다.
좁은 면적에 한이 맺혀서인지... 베란다를 하나 같이 샤쉬 창을 달아 실내화하고
화분이니... 잡다한 것들을 거기 놓아둔다.
일산신도시에 살 때 나는 베란다에 알미늄 샤쉬 창을 하는 것을 거부했다.
거기서 햇살을 쪼이고 바람도 쐬면서 차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고...
베란다 본래의 기능대로 쓰겠다는 고집에서였다.
그러나 우리 집만 샤쉬를 안해서 미관상 보기 싫다는 등..
우리 동의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는 둥... 주변의 압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내 집을 내 마음대로도 쓸 수 없었다. 결국은 항복하고 말았다.
아파트의 발코니 내지는 베란다는 한옥으로 치면 처마 같은 공간이다.
실내와 자연이 만나는 전이공간으로 실내도 옥외도 아닌 중간지대이다.
유럽 사람들의 베란다에는 우리 처럼 화분이 가득하지 않다.
그들도 꽃을 사다 심고 즐기고 하지마는 그들은 베란다 밖에 내놓는다.
유럽의 베란다에 놓인 꽃은 집안에 있는 나도 보지마는
집 밖에 행인들에게 더 잘 보인다.
내가 즐기기 위한 화단이라기 보다는 남을 위한 화단...
나만의 정원이 아니라 우리들의 정원이다.
우리 집도 예외가 아니었다. 마치 온실처럼
여러 개의 화분이 빽빽하게 들어앉아 있었다.
제대로 관리를 못해 말라 죽어버린 화분도 4-5개나
그 베란다에 을씨년 스럽게 방치되어 있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인데...
그 베란다가 반 온실처럼 반 창고 처럼 사용되다 보니
집 안에서는 햇살도 쬘 수 없고 별을 우러를 수도 없었다.
우리 집 바로 앞에는 산이다.
거실에 앉아서도 숲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내가 누리는 커다란 사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과감하게 베란다를 치웠다. 말라버린 화분들은 내다 버리고
몇 개는 실내로 들이고 소한재로도 옮기고
깨끗하게 바닥을 물청소한 뒤 말려서는 거기다 대자리를 깔았다.
작은 차탁 하나를 내 놓고 차 마시고 해바라기 하는 장소로 바꾸었다.
거기 앉으니까 바로 하늘이 쳐다 보인다. 손에 잡힐 듯이 숲이 다가온다.
바람도 햇살도 훨씬 싱그럽다.
차 맛도 더 좋은 것 같다.
앞으로 좀 더 손을 보고 닦고 닦아서 마알간 공간을 만들면...
차 마시기 좋은 곳이 될 것 같다. 별 보고 바람 쐬기 좋은 자리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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