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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종되어 버린 < ...쟁이> 정신
    차 한잔의 단상 2007. 4. 30. 11:08
    실종되어 버린 < ...쟁이> 정신


    청자의 그 화려한 아름다움을, 백자의 그 소박한 멋을 자랑하는 이 나라의 내노라하는 레스토랑에서 접시를 뒤집어 보면 모두 일제들이다. 임진왜란은 도자기 전쟁이었다. 당시 마당에 굴러다니던 우리의 닭 모이 그릇은 일본인들의 식기 보다 고급이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도공들은 괄시를 받았다. 오히려 잡아간 일본은 극진히 대접했다. 그 결과 도자기대국, 우리는 이제 일본에서 도자기를 수입하는 나라가 되고 말았다. 반대로 일본의 자기는 세계 최고가 되었다. 도자기의 영어는 China다. 우리의 도자기 기술을 빼앗아 간 일본의 자기는 오늘날에는 차이나의 대표가 되었다.


    국보 1호인 남대문을 지은 목수의 이름을 그렇게 걸작이라는 석굴암을 조각했던 석공의 이름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미켈란젤로의 이름이 바티칸 성당과 함께 영원한 것과는 너무나 대조를 이룬다. 5000년, 찬란한 한국문화의 상징으로 우리는 늘 청자를 그리고 백자를 자랑한다. 그러나 그를 만들었던 도공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후손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大盜의 이름은 이 나라 역사에 남아도 시대를 초월하는 걸작을 빚어낸 장인의 이름이 우리 역사에 남는 법이 없다. “죽어도 자식에게만은 이 짓을 면하게 해주어야지...” 그것만이 이 나라 장인들의 유일한 소망이요, 날로 새로워지는 다짐이었다.


    장인을 깍듯이 대접한 것은 일본만이 아니었다. 서양인들에게 가장 흔한 성의 하나인 Smith는 쇠를 다루던 대장장이들의 성이다. 뒤에는 더욱 전문화되어 Arrow-smith, Gold-smith, Silver-smith 등으로 세분화되었다. Miller는 밀가루를 만들던 집안이었으며 Taylor 家는 옷을 만들던 집안이었다. 프랑스에서도 광고인의 고전 격인 호객 하는 사람을 우리는 Gregery de Criour로 명명함으로써 일찍부터 장인의 家를 이루었다. 르네상스를 꽃피운 것도 따지고 보면 장인들이었다.


    밴 자민 프랭클린은 언젠가 테이블 밑바닥 그것도 안쪽을 장식하느라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목수를 보았다. “무엇 하러 그 고생을 하면서 거기 까지 장식하느라 애를 쓰시오? 보이지도 않는 그 안쪽에 장식이 있는지 아는 사람도 없을 텐데...” 하고 벤저민이 딱하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그가 “나으리께서 알고 제가 알고 그리고 하늘이 알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벤 자민 프랭클린은 그 말에 크게 깨달은 바 있었다.


    .... 울스 브르그에 있는 폭스바겐 공장에서는 육안으로는 알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한 도장의 흠집 때문에 매일 아까운 자동차들이 버려지고 있습니다. 비즈니스 차원에서 본다면 굳이 안 해도 될 일을 부득부득 한다는 것. 이것은 바로 저희 폭스바겐의 장인정신 때문입니다. .... 내가 좋아하는 폭스바겐 광고의 The Meaning of Craftman-ship, 장인정신의 참뜻이라는 소제목이 붙어있는 바디 카피 중의 일부이다. 윤 오영의 수필, <방망이 깎는 노인>도 이 비슷한 장인정신의 감동을 그리고 있다. 현대 기업에서 광고의 역할이 커지면서 광고하는 사람들도 광고쟁이에서 이제는 광고 전문가로 대접받게 되었다. 이제 우리 나라도 쟁이들이 인간문화재다 전문가다 옛날에 비해 상당히 대접이 후해졌다. 그런데 대접이 나이진 만큼 품질이 더 나아졌다는 증거를 찾기가 어려운 건 또 무슨 아이러니인지???


    나는 작년 가을에 시골에 조그만 집을 하나 마련했다. 전형적인 시골집이다. 별장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사회 이데올로기와는 비슷도 않지만 살림집과는 별도의 쉬러 가는 집이라는 점에서 소위 말하는 별장인 셈이다. 나는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자주 우리 집 거실 천장을 보여준다. 잘 생긴 조선 무처럼  미끈한 서까래가 드러나도록 원래 있던 천장을 뜯어내고 새로 하얗게 회를 발랐다. 그 천장의 4분의 1쯤은 이 집을 지을 당시에 바른 것이고 나머지는 석달 전에 바른 것이다. 57년 전에 미장이가 바른 곳은 지금도 바늘 하나가 들어갈 틈이 없을 만큼 완벽하건만 석 달 전에 미장사가 바른 건 갈 때마다 부스러기가 떨어져 내 가슴도 함께 바스러진다. 모르기는 하지마는 57년의 미장이보다는 오늘날의 미장사가 훨씬 더 후한 보수를 받았을 것이다. 그 엄청난 작업 결과는 보수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정신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 고향 안동에 가면 낙동강 가에 법흥사 7층 전 탑이 서있다. 안동을 찾는 이들은 모두 하회 마을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도산서원 주인, 이 퇴계의 위대함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법흥사 7층 전 탑은 찾는 이도 별로 없고 이 탑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는 이는 더욱이 없다. 이 7층 전 탑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나에게는 안동을 찾는 외국인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면서 동시에 끝까지 보여주기 싫은 가장 부끄러운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주로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전 탑  양식의 이 탑은 통일 신라 때 세워진 것이다. 중앙선 열차를 타고 지나가다 창 밖으로 팔을 내밀면 손끝에 닿을 듯 철로 바로 옆에 서있다. ‘지축을 울린다‘는 표현을 자주 쓰지만 대개는 수사적인 말이지 사실을 아니다. 그러나 법흥사 7층 전 탑 옆에 서면 그것은 결코 修辭나 허언이 아니다. 하루에도 중앙선을 달리는 수십 편의 열차가 그야말로 지축을 울리면서 지나가지만 그래도 그 탑은 용케도 천년의 세월을 그렇게 서있다. 나는 그 탑 옆에 서면 그 자리에 그렇게 서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저 고맙고 그저 미안하다. 시멘트로 범벅을 한, 철근으로 도배를 한 성수대교가, 삼풍백화점이 단 몇 년을 못 버티고 주저앉는 세상에 이 탑은 그 푸대접을 받으면서도 천년의 세월을 버티고 있다니 그야말로 경이요 기적이라 할 것이다. 그 위대한 그리고 신비한 힘은 어디서 오는가? 필시 돈과는 상관없이 佛心으로 쌓아올린, 철두철미한 장인정신으로 쌓았기 때문일 것이다. 돈 받는 만큼만 쌓는 오늘날의 벽돌공들 얼굴 위에 천년 전에 그 탑을 쌓았던 이름 모를 쟁이(?)의 얼굴이 겹쳐 온다.

     

    어느 건설 공사장에는 <혼을 담은 시공>이라는 글귀가 크게 붙어있었다. 그 것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인지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정말 알기나 할까? 그 말대로라면 공사가 끝나면 거기의 일꾼들은 모두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해야 한다. 혼을 그 속에 쏟아 버렸기 때문이다. 정말 혼을 담아 시공했다면 와우아파트 사건도,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사건도 없었을 것이다. 신라 화가 솔거는 황룡사 벽에 소나무를 그렸는데 요즈음 말로 어찌나 리얼했던지 그 가지에 내려앉으려다 떨어져 죽은 학이 수 백 마리였다고 한다. 한갓 손으로 재주로 그린 그림이 그럴 수는 없다. 필시 마음으로 혼으로 그려낸 것일 게다.


    과거의 쟁이, 현재의 장인, 사실은 바뀌었어야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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