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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愛蓮說
    차 한잔의 단상 2007. 4. 16. 03:53

    나의 愛蓮說

     

    오랫 동안 숨겨진 정원, 秘苑이라 불리었던 창덕궁 후원에는 숲 속, 계곡 마다 왕의 정자들이 숨어있다. 부용정, 애련정, 존덕정, 관람정, 승재정, 농산정, 취규정, 취한정, 소요정, 청의정, 태극정, 청심정, 능허정.... 하나 같이 그림처럼 아름다운 정자들이지만 나 보고 하나만 가지란다면 애련정을 갖고 싶다. 애련지에 하얀 두 다리를 담그고 서있는 딱 한칸 짜리 정자. 나중에 한옥을 지으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애련정 같은 정자 하나도 지어보고 싶은 욕심을 보듬고 있다.

     

    애련지에 한 송이 연꽃 처럼 떠있는 愛蓮亭. 이름 그대로 연꽃을 사랑하는 못이요 연꽃을 사랑하는 정자다. 정자에 앉아 물 위에 뜬 연꽃을 바라보는 호사를 옛 어른들은 무척 좋아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정자가 앉은 못에는 언제나 연꽃이 심어져 있었다. 경복궁의 경회루가 그랬고, 향원정도 그랬고 강릉 선교장의 활래정도 그랬고. 진양의 용호정도... 그랬다. 그러고 보면 창덕궁 후원이 시작되는 부용지와 부용정 또한 연꽃을 이름함이 아닌가? 지금은 pond. 조그만 못을 가르키는 일반 명사가 되어버렸지만 따지고 보면 연못은 연 못, 연을 심은 못이다. 지금이야 연꽃이 있든 없든 모두가 연못이지마는 옛 사람들은 못에는 으레히 연을 심었던 것 같다. 연못의 연장선에서 蓮塘, 蓮池... 못과 연은 바늘 가는데 실 가 듯이 짝패로 붙어 다녔다. 함안의 무기연당, 달성의 하엽정, 영천의 연정 고택 등 조선시대 선비들의 정원 역시 못과 건물에 연자가 붙어있다.

     

    옛 선비들이 연못에 연꽃을 심었던 것은 연꽃이 아름답기도 해서지만 그것이 지니고 있는 상징적 의미 때문이었다. 선비들이 사랑했던 연꽃은 군자로 일컬어지는 유교의 이상적 인간상의 상징이었다. 연꽃을 군자의 상징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송나라 주돈이의 <愛蓮說>에서 비롯되었다.

     

    주 돈의는 蓮(연)은 : 연은 花之君子者也(화지군자자야)라 : 꽃 중의 군자 같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予獨愛蓮之出於泥而不染(여독애련지출어니이불염)하고 : 나는 홀로 사랑하였으니, 연꽃이 진흙에서 나왔으면서도 물들지 아니하고, 濯淸漣而不夭(탁청연이부요)라 : 맑은 물결에 씻기어도 요염하지 아니한 것을 사랑한다 中通外直不蔓不枝(중통외직부만부지)하고 : 가운데는 통하며 밖은 곧아서, 덩굴 뻗지 않고 가지치지 않으며, 香遠益淸(향원익청)하여 :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으며, 亭亭淨植(정정정식)하여 : 우뚝이 깨끗하게 서있으며, 可遠觀而不可褻翫焉(가원관이부가설완언)하니 :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도 없다고 예찬했다.

     

    경복궁 香遠亭과 보길도 부용동 정원의 益淸軒은 향기는 멀리 더욱 맑다는 향원익청 대목에서 각각 따온 것이다.

     

    연꽃이 불교의 상징 꽃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 불교에서는 속세의 더러움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깨끗한 꽃을 피운다고 청정함의 상징으로 극락세계를 이 연꽃에 비유한다. 극락세계를 연방이라 하고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하는 사람의 모습을 연태라고 하였다. 그래서 부처님은 언제나 연화대 위에 앉아 계신다. 그래서 부처님이 계시는 대웅보전은 언제나 수백 수천 송이의 연꽃을 새긴 연화문의 꽃살문으로 장식된다. 사월 초팔일이면 수백수천개의 연등이 내걸리는 것도... 몽은사에 시주쌀 때문에 인당수에 몸을 던졌던 효녀 심청도 연꽃을 타고 지상세계로 돌아온다.

     

    연꽃이 불교의 상징이라는 것 때문에 생긴 웃지 못할 에피소드 하나. 199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경회루와 향원정 연지에는 연꽃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경복궁 중건 당시 이 연못에 연꽃을 심었던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향원익청의 경지를 생각하고 그 뜻을 새기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대통령이 청와대의 주인으로 있던 문민 정부 시절 어느 날 그 무성하던 연꽃이 느닷없이 뿌리채 뽑혀나가는 수난을 당했다.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 우리의 나라의 대표적인 궁궐 안에 있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는데....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이럴 때는 나도 영 표정 관리가 안된다.

     

    연꽃을 사랑했던 것은 선비나 불교 신자만이 아니었다. 연밥에 수 십 개의 탄알처럼 박혀있는 연꽃 씨앗 때문에 일반 백성들에게 연꽃은 連生貴子. 다산의 상징이었다. 보통 꽃은 꽃이 피고 난 다음에 열매를 맺으나 연꽃은 꽃과 동시에 열매를 맺는 것 처럼 귀한 자식을 빨리 많이 낳게 해달라는 소망을 담아 여인의 옷에 연꽃 무늬를 새겼다. 같은 이유로 부인들의 규방에 놓는 병풍에도 연꽃이 자주 등장한다.

     

    차를 마셔온 지가 햇수로는 제법 되었지만 늘 한번 만들어 보고 싶은 차가 있다. 연꽃차가 그것이다. 아침 해를 보며 꽃을 피우고 저녁 달을 보며 꽃을 오무리는 연꽃의 성질을 그대로 이용하여 만든 차다. 해가 뜨기 전 연꽃잎을 살짝 벌려 차 약 3그램 정도를 싼 한지 봉지를 넣고 명주실로 묶어둔다. 종일 꽃 속에서 연향을 머금은 차는 그대로 꺼내어 살짝 습기를 가시게 한 후 다관에 우려 마셔도 되고, 꽃과 함께 즐기고 싶으면 그 꽃봉오리를 잘라 와서 연지에 고정시키고 따뜻한 물을 부으면 그 온기 때문에 마치 한 송이의 연꽃이 피어나듯이 서서히 꽃잎이 열리면서 차향과 연향이 사방에 은은하게 퍼진다.

     

    연꽃의 화가 그러면 내 머리 속에는 수련 연작으로 유명한 모네가 떠오른다. 모네는 수련 연작의 산실이었던 지베르니에 머문지 7년째, 마침내 그 집을 직접 사들여 정원에 온갖 종류의 꽃나무를 심고 연못에는 일본풍의 작은 다리를 가로 질러 놓고 수련을 띄워 프루스트의 말처럼, 그 자체가 하나의 회화작품인 그의 정원을 만들었다. 연못이 있는 정원은 일본 판화에서 착상을 얻은 것인데, 이른 아침 그는 매일 여기에서 자신의 명상을 거듭하며 빛의 순간적 변화, 거기에 따른 색조의 미세한 떨림을 이용한 회화세계로 나아갔다.

     

    연꽃의 바다에 풍덩 빠지고 싶다면 회산 백련지로 오라. 무안 일로에 있는 회산 백련지는 동양 최대의 백련 자생지로 여름이면 끝간 데 없이 펼쳐지는 연꽃으로 피어 장관을 이룬다. 전주 덕진공원도 연꽃의 명소중 하나다.

     

    나도 연꽃을 키우고 싶었다. 적잖은 돈을 주고 몇 번이나 연을 샀지만 다 죽이고 말았다. 하지만 연을 갖고 싶다는 욕심만은 아직도 죽지 않았다. 며칠 전에 인터넷에서 연꽃 씨앗을 샀다. 백련, 홍련 각각 3알씩 여섯 개를 보내 준다고 햇는데 그 배인 열 두개가 왔다. 연꽃 씨앗은 너무나 단단해서 씨앗 그 자체만으로는 싹이 트지 않는다. 하얀 속살이 드러날 때 까지 사포나 시멘트 바닥 같은 거친 면에다 갈아야 하는데... 어찌나 단단한 지 엄청 손이 아팠다. 열 개를 가는 데도 손이 얼얼할 정도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연꽃은 왜 이렇게 단단할까? 이렇게 단단해서야 어떻게 번식을 하라는 것인지.. 조물주의 속마음이 정말 궁금하다. 보성에 있는 대원사 수생식물원에는 <대하>라는 2 천 년 전의 연꽃이 피고 있다. 대하는 지난 1951년 일본 천엽현에서 식물학자 다이까 박사가 지층조사중 발견한 연꽃 씨앗 3개 중 발아 증식에 성공한 종으로 연꽃 전문가들 사이에 '전설의 연꽃'으로 알려진 꽃이다. 연꽃의 그 단단한 껍질은 어쩌면 천년의 세월 속에서도 죽지 않는 생명의 안전 캡슐인 지도 모를 일이다.

     

    보통은 일주일이면 싹이 튼다는데 나의 연은 아직도 싹 틀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이 글은 연꽃 씨앗이 싹 트기를 기다리는 기연문인 셈이다. 오늘 같은 날 애련정에 앉아 연꽃을 바라보면서 연꽃차 한 잔을 마시고 있노라면 나 또한 저절로 군자가 되고 극락세계가 바로 그 곳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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