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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다림, 그 아픔에 대하여
    소한재(笑閑齋)일기 2007. 6. 23. 08:12

    시골집(소한재)에는 늘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저런 사소한 일들이. 이번 주에 못하면 다음 주에 하면 그만이고 이 달에 못하면 다음 달에 하면 될 일이다. 그래서 나는 한껏 게으름을 피운다. 그래서 늘 시작은 거창하였으나 끝은 없다.

    이 후미진 시골 마을로 예고 없이 찾아 와주는 이가 있다면 너무나 반가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좀체로 없다. 그래서 소한재에 머무는 대부분의 시간을 나는 무료하다. 심심하고 따분하다. 그러면서도 돌아오면 바로 또 가고싶어지는 내 마음을 나도 모르겠다. 아내는 기둥에 꿀 발라 놓았느냐고 타박이지만 곁에 있어도 나는 항상 그대가 그립다던 류 시화의 표현처럼 거기 있어도 나는 늘 거기가 그립다.

    조금 일하다가 싫증나면 팽개쳐 두고 음악을 듣고 그도 싫증나면 찻물을 끓이고 잠이 오면 한 숨 오수를 즐기다가 빈둥빈둥... 책 보다가...한껏 게으름을 즐긴다. 그 무료함을 즐긴다. 그리고 하루 종일 나는 기다린다. 누군가를 그리고 무엇인가를....마땅히 이 후미진 시골 동네까지 찾아와줄 이가 없는데... 그 사실을 너무나 뻔히 알면서도 나는 늘 누군가를 기다린다.

    가만히 오는 비가 낙수져서 소리하니
    오마지 않은 이가 일도 없이 기다려져
    열릴듯 닫힌 문으로 눈이 자주 가더라

    최 남선의 <혼자 앉아서>라는 시(조) 그대로다.

    샤뮤엘 베케트의 부조리 드라머, <고도를 기다리며>에서는 두 명의 주인공이 계속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그 고도가 무엇인지 정말 오는 것인지 ... 아는 이가 없다. 그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강태공은 낚싯대를 드리우고 세월을 기다린다는데... 나도 잘 모른다. 내가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친구인 듯도 하고 전설 처럼 잊혀져 버린 옛 애인인 듯도 하고, 말없이 불쑥 찾아들지도 모르는 운명적 만남의 주인공인 듯도 하고, <꼭 다시 올께요 선생님>이라고 써놓고 간 제자인 것 같기도 하고....

    소쇄원 입구에는 아담한 초정이 손님을 맞는다. 대봉대, 봉황을 기다리는 집이라는 이름을 단 편액을 걸고 섰다. 봉황은 천년만에 한번 핀다 는 대나무 열매만 먹고 천리를 날고도 오동나무 가지가 아니면 깃들지 않는다고 해서 입구에는 장엄한 대밭이, 대봉대 옆에는 오동나무 한 그루가 심겨져 있다. 봉황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그것들을 심었을 그 주인의 봉황은 아마 임이거나 반가운 친구거나 귀한 손님이었을 것이다. 봉황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문 밖을 서성였을 주인(소쇄공 양산보)이 마음이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진다.

    낚시꾼들도, 茶人들도 기다림의 미학을 말한다. 기다리는 동안은 행복하다. 올지도 모른다는 열린 가능성 때문에 고통스러우면서도 마치 고들빼기 김치나 씀바귀 짱아치처럼 씁쓸하면서도 그 속에는 씹을 수록 감칠 맛 나는 즐거움이 있다. <가나와 함께라면 고독마저도 감미롭다.> 몇 십 년 전에 이 나라 여고생들의 마음을 흔들어 초코렛 시장의 지도를 바꾸어 놓았던 한 줄이다. 그런 만남의 희망 때문에 기다림의 고독은 감미로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가능성이 닫혀버리는 기다림의 끝에는 절망의 고통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기다림에는 전라도 말로 쨘-한 아픔이 있다. 望夫石 전설이나 정읍사에 나오는 백제 여인의 기다림에는 징한 그리움을 너머선 구비구비 한이 서려있다. 그런 지경에 이르면 그 기다림의 맛은 향기로운 커피가 아니라 쓰디쓴 독약 이상일 것이다. 그 누가 아랴? 숯 검댕이 같은 나의 이 가슴을....그 쨘한 아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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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소한재에서 전원주택 카페 사람들과의 번개 모임이 있는 날, 벌써 내 마음은 사립문 앞을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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