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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한개마을에서-1옛집을 찾아가는 길 2008. 2. 25. 00:52
“맑은 강 한 구비 마을을 감싸 안아 흐르고, 긴 여름 강마을에는 일마다 유심하다”(淸江一曲抱村流, 長夏江村事事幽). 이 시는 여름날 강변 농촌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렸다. 우리 선조들은 마을 앞에는 강이 흐르고 너른 평야가 있어 생업에 부족함이 없고, 뒤에는 산이 있어 차가운 북서풍을 막아주는 아늑한 곳을 찾았다. 그런 곳에 마을 터를 잡아 마을을 일구고 삶을 길러왔다. 이러한 대표적 명당마을 중 하나가 경북 성주군 월항면에 소재한 ‘한개마을’이다.
산과 물이 명당보국(明堂保局)을 이루는 한개마을
성산 이씨(星山李氏) 집성촌인 한개마을은 550여년 전 진주목사를 지낸 이 우(李友)가 정착하여 터를 잡은 후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한개’ 지명은 ‘크다’는 뜻의 ‘한’과 ‘나루’라는 의미의 ‘개’가 합쳐진 말로서 예전에 이 마을 앞을 흐르는 낙동강 지류인 백천(白川)가에 나루터가 있어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은 세월이 흐르고 물길이 바뀌어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한개마을’의 지형을 살펴보면 마을 뒤 주산(主山)인 331.7미터의 영취산(靈鷲山)에서 내려온 용맥이 마을을 받쳐주고 있다. 이 영취산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로 뻗어 내려온 산맥이 마을 동쪽으로 좌청룡이 되고, 서쪽으로 우백호가 되어 한개마을 입구 어름에서 딱 멈추면서 감싸 안듯 마을을 보호하고 있다.
물(明堂水)은 성주읍을 지나온 물과 월항면에서 내려오는 두 줄기 물이 한개마을 위 대산리 초입에서 만나 한 줄기가 되어 한개마을을 감싸 안으면서 동쪽으로 흐른다.
이 냇물이 ‘흰 내’ 즉 백천(白川)이며 낙동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백천 넘어 야트막한 안산(案山)이 마을을 향해 읍하듯이 서 있고, 그 너머 멀리 성주읍의 뒷산 역할을 하는 성산(星山)이 앞을 감싸준다.
이곳은 풍수이론에서 말하는 마을 뒤 주산(主山, 일명 祖山)이 수려 양명하고 좌우로 청룡, 백호가 다정하게 감싸 주었으며, 또 마을 앞에서 호응하는 안산(案山)과 멀리 있는 조산(朝山)이 조화를 잘 이룬 ‘명당보국’(明堂保局)이다. 옛날 농경사회의 집성촌락으로 최적이라고 하겠다.
살기 좋은 곳, 인물과 재화는 끊이지 않고
살기 좋은 이곳 한개마을은 마을이 들어선 후 조선시대 대과 급제자 9명을 배출하였고, 지금도 후손들이 대처로 나가 교수, 교사 등 교직자로 종사하거나 민선군수에 당선되는 등 인재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시절 3.1운동 때에도 이곳 유학자들이 성주일대에서 가장 먼저 봉기하였다고 한다.
좋은 명당 터 마을답게 이 마을에 남아있는 번듯한 전통 한옥인 한주종택(寒州宗宅), 교리댁(校理宅) 등 일곱 집은 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그러나 농경사회 최적의 삶터였던 한개마을도 산업화 과정 중 80여 호에서 현재 40여 호만 남아 그것도 대부분 노인들이 지키고 있다고 한다. 이곳을 지키는 노인들마저 가고 나면 이 마을이 어떻게 될까 아쉬울 뿐이다.* 가는 길 : 경부고속도로 왜관 나들목에서 빠져 나와 4번 국도를 타고 김천 성주쪽으로 가다가 33번 국도 성주쪽으로 11Km 가면 월항면 소재지이고 이곳에서 선남면으로 좌회전하여 3km가면 왼쪽에 있다
* 주변 볼거리 : 세종대왕 왕자태실, 성밖 숲, 무흘구곡, 독용산성, 회연서원, 성주댐, 가야산 국립공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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