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시민과 미술관 사이의 거리
    살며 생각하며 2008. 4. 14. 02:48








     

    국립현대미술관 유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분명 크고 아름다운 미술관이다.

     

    대공원역 2번 출구를 나와 2-30분을 걸어올라가면

    아름다운 호수를 지나 산 속에 성채처럼 우리의 국립현대미술관이 숨어있다.

    한참을 걷고도 미술관은 아직도 산 속에 아마득히 멀어 보인다.

    가까이 다가 왔는데도 힘들여 찾아온 나를 팔 벌려 맞는 모습이 아니다.

    애써 외면 듯 돌아앉아 있다.

    저 멀리서 돌아앉아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모습이

    내게는 미술관과 시민 사이의 상징적인 거리로 다가온다.

    국립이라는 말이 붙으면 의례히 그렇듯이

    건물 분위기 부터 잔뜩 힘이 들어간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산속에 숨어 있는 요새나 성채 같았다.

    과거의 관공서 건물이라면 무슨 공식 처럼 의례히 우람한 좌우 대칭의 권위주의적 건축에다

    단순한 직선 중심의 디자인, 그리고 재료로서 돌이 갖는 중량감이 그런 나의 생각을 부채질한다.

     

    나는 쉽게 그리고 가볍게 다가설 수 있는 미술관이 좋은데...

    마실 가듯 슬리퍼 찍찍 끌고 미술관에 들리고 싶은데...

    근엄한 표정이 아니라 장난스럼 표정으로 미술 작품들을 만나고 싶은데

    놀이하 듯 미술을 즐기고 싶은데.... 여기서는 그럴 수가 없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왜 이렇게 도시에서 멀치감치 떨어진 산 속에

    성채 처럼 돌아앉아있어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국립극장도 숨이 턱에 찰 때쯤에서야 겨우 권위적인 얼굴을 드러내 보여준다.

    남산 중턱에서 도시를 내려다 보고 서있는 국립극장에게 물어보고 싶다.

    국립극장 앞에만 서면 왜 시민은 그렇게 작아 보이는 것인지..

    호수 건너편에서 바라본 국립현대미술관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피안의 세계 처럼 아스라히 떠있었다.

     

    숲과 호수와 이름조차 아름다운 청계산...

    둘러싸고 있는 주변 환경은 썩 훌륭하지마는

    왜 하필 미술관이 시끌벅적한 놀이 동산과 동물원 사이에 끼어앉아야 하는 것일까?

     

    쉽고 편하게 들릴 수 있는 미술관이 아닌지라

    폐관 시간 이전에 다 보기 위해서는 나는 자꾸 시계를 봐야만 했다.

    가슴 뛰는 그림들 앞을 관병식 하듯 지나쳐야 했다.

    전투하 듯... 해치워야 했다.

     

    내가 국립현대미술관을 잘 찾지 않는 것은

    쉽게 다가서기 어렵다는 접근성의 문제도 있지마는

    시끌벅적한 놀이 동산과 동물원 사이에 있다는 것이 더 큰 이유다.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은 재미있게 봤지만

    나는 미술관 옆 동물원도 재미없고

    놀이동산 옆 미술관은 더욱 재미없다.

     

    찬란한 봄이라 대공원은 인산인해였지만

    섬처럼 떠있는 미술관은 너무나 한가했다.

     

    다리 아프게 눈이 아프게 그림들을 다보고

    차 한 잔의 휴식을 위해 발코니에 있는 카페테리아로 나왔을 때

    머리 카락을 헝클어 놓고 달아나는 한줄기 바람

    얼굴을 물 들이며 빗겨드는 오후의 황금빛 햇살.

    마악 힘겹게 싹을 밀어내고 있는 연두빛 숲...

    놀이동산이나 리프트 승차장에서 들려오는 소음만 아니었다면

    내 행복은 팝콘 처럼 두 배 세 배로  뻥틔기 될 수 있었는데...

     

    파리의 퐁피두 센터가 유리 중심의 열린 건축을 지향하고 있다면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은 돌 중심의 닫힌 건축을 지향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국립현대미술관 -

    루브르나 뽕피두 센터처럼 그렇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위치에 있으면 안되나?

    도심 속에서도 조용하고 한가한 그런 자리에서

    찾아오는 시민들을 맞아주면 안되나?

     

    국립현대미술관을 나오면서

    내 머리 속에는 김 소월의 <산유화>의 한 귀절이

    고장난 레코드 판 처럼 자꾸 생각났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가을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

    ................................

    ................................

    ................................

    ................................

    ................................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