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是日也放聲大哭 : “오호, 통재라 사법부여”有口有言 2009. 5. 31. 11:01
是日也放聲大哭 : “오호, 통재라 사법부여”
2009년 5월 29일 금요일. 그 날은 노 무현 전대통령을 국민의 가슴에 묻은 날이다. 그러나 내 머리 속에 그 날은 대한민국 사법부를 땅에 묻은 날로 남아있다. 대한민국의 사법부가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스스로의 손으로 제 목을 눌러 자살한 날이었다.
노 전 대통령 영결식 소식으로 TV 화면과 신문 지면이 도배가 된 그 날 저녁, 뉴스 말미에 짧게 삼성의 편법 상속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무죄 확정 기사가 나왔다. 평상시 같으면 뉴스 시간의 반 이상을 채울만한 빅 뉴스였을 것이다.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도 안 되는 16억원을 세금으로 내고 200조원이 넘는 삼성 그룹을 물려받은 것에 대해 이 나라 사법부의 최고 기관인 대법원이 공식적으로 면죄부를 발급해 준 것이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노 무현 대통령의 자살 소식에 온 나라가 경악했다. 이 뉴스를 접하면서 나는 정말 혼자 중얼거렸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이 재판은 한국의 최고 권력자가 누구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한국의 무한 경제 권력, 삼성이 유한 정치 권력 보다 위에 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一 審에서 그리고 二 審에서도 유죄로 판결한 사건을 그것도 국가기관인 검찰조차 못 믿어서 특별검사제 까지 도입해 수사, 기소한 사건을 더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13년을 끌어온 사건을 이 나라 사법부의 정점인 대법원은 전원합의부 재판을 통해 손바닥 뒤집 듯 뒤집어 무죄를 확정한 것이다.
인터넷으로 관련 기사를 찾아 읽어보았지만 재판부의 논리는 이해하기도 힘들었고 전혀 상식적이지도 않았다. 법은 도덕의 최소한, 상식의 최소한이라더니 나에게 그 날 법은 도덕의 최소한도 상식의 최소한도 아니었다. 그 날 법원은 상식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도 아니었다.
그것도 노 무현 전대통령 장례로 국민들의 모든 관심이 거기에 집중되어 있던 날 전격적으로 해치운 것이다. 설령 그 재판 날짜가 미리 부터 그 날로 잡혀있었고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억울함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건전한 상식을 가진 대법원이라면 마땅히 재판 날짜를 미루었어야 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있다는 이 나라 사법부가 瓜田不納履 李下不正冠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을 모를 리 없거늘 왜 하필 그 날이어야만 했는지?? 13년이나 끌어온 재판인데 일 주일 늦어진다고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될 일도 없을터인데.... 그렇게 해치우다니? 해치웠다고 밖에 나는 달리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한다.
물론 하급 법원의 판단을 상급 법원이 뒤집어 엎을 수는 있다. 하급 법원이 한 판단의 오류를 바로 잡아라고 상급 법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좀체로 없다 마땅히 없어야 한다. 법원의 판결은 한 개인에게는 그야말로 생사 여탈권을 결정하는 막중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법원의 판결은 완벽해야 하며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법률 적용을 명백하게 잘 못 했다거나... 하급 법원의 판단에 결정적인 하자가 있을 때만 상급 법원은 하급 법원의 재판 결과를 뒤집을 수 있다. 그러나 상급 법원이 하급 법원의 판단을 뒤집어 엎는 것은 사법부 스스로도 매우 치욕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사법부의 판단에 중대한 오류가 있었음을 온 국민 앞에 스스로 자인하는 결과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 국민은 사법부를 믿을 수가 없다. 모든 재판이 3심 까지 가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재판이 1심에서 끝나는 현실을 생각해보면 그런 일이 반복된다는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법부의 오판으로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쓸 수도 있는가를 법원 스스로가 드러내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지 않겠는가?
그런 재판을 하고도 사과 한 마디가 없는 대한민국 사법부를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설령 일반 국민의 법 감정과 배치되는 삼성의 재판이 옳은 것이라고 할 지라도 온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그런 중요한 사건을 지방법원과 고등법원이 그렇게 잘못 판단함으로써 국론을 분열시키고 소모적인 논쟁으로 국력을 낭비하게 했다면 마땅히 사죄해야할 일이 아닌가?
그러면 13년 동안 쏟아온 그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그리고 특별검사의 수사가 다 헛 것이었고 괜한 시간 낭비였다는 말인가? 괜히 대한민국 최대의 기업을 부당하게 괴롭혀서 기업 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만들었다는 말인가? 한국이 낳은 자랑스러운 세계적 기업, 삼성이 시샘나서 괜히 한번 부려본 몽니에 불과했단 말인가? 삼성이 무죄라면 이제 삼성이 그런 부당한 국가 권력을 고소 고발해야 할 일이 아닌가?
참으로 뻔뻔한 대법원이고 대한민국 사법부다. 이 뉴스를 접하고도 분노하지 않는 사람들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국가 기관인 검찰조차 못 믿겠다고 특별검사제 까지 밀어부쳤던 정치인들이 입 다물고 있는 현실도, 자기들을 엉터리 판사로 핫바지로 만들었는데도 들고 일어나지 않는 대부분의 판사들도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도 들었다. 노 무현 대통령이 박 연차 회장의 돈이 아니라 이 건희 화장의 돈을 받았더라면, 삼성의 돈을 받았더라면 그 열 배는 받았을 것이고 검찰에 불려다니는 수모도, 저렇게 자살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아이러니칼하게도 노 무현의 비극은 삼성의 돈을 거부한 데서 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금요일은 대한민국 사법부 까지 공식적으로 삼성 앞에 무릎을 꿇은 날이다. 삼성으로서는 황금 요일이었고 힘없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흙, 개 같은 토요일이었다. 삼성에게는 브이 데이, 승리의 축가를 불렀던 날이었고 국민들로서는 패배의 조종을 울린 날이었다.
삼성에 달려들고 삼성에 딴지 거는 사람들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국민들은 기억한다. 삼성의 비리를 까발렸던 김용철 변호사는 그야말로 <인수봉에 계란을 던지는 돈키호테>였다. 이 나라 정의의 마지막 보루인 대법원조차도 무릎을 꿇는 그 절대권력 앞에 대들었던 김 변호사는 그야말로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 강아지>에 지나지 않았음을 우리는 똑똑히 보지 않았던가? 삼성을 망신 주려던 그만 개망신 당하지 않았던가? 그 불법(?) 승계의 실무를 맡았던 계열사 사장들도 다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제 이 나라에서 마음만 먹으면 삼성이 하지 못할 일이란 없다.
노 무현 전대통령을 국민의 가슴에 묻은 날 그 날은 대한민국 사법부가 땅에 묻힌 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사법부의 죽음 앞에 조화를 바치는 사람들이 하나 없다.
이 글은 불명예스러운 대한민국 사법부의 죽음 앞에 바치는 弔辭다. “오호 통재라 대한민국의 사법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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