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스크랩] 영남루가 아름다운 이유
    살며 생각하며 2009. 9. 4. 10:05

     

     

     

     

     

    영남루가 아름다운 이유 1

     

    평양의 부벽루는 아직 내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 그렇다치고 영남루에 걸린 편액 嶠南名樓 글자 그대로 한강 이남에서는 영남루 이상의 누정을 본 적이 없다. 옛날 영남루는 밀양도호부 객사의 부속 건물로 관원들이 손님을 접대하거나 주변 경치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던 곳이었다.

    기둥이 높고 기둥 사이의 간격이 넓어서 규모가 매우 커 보이는데 거기다가 양쪽 옆에 날개 처럼 두 부속 건물, 능파당과 침류각을 거느리고 있어 더욱 화려하고 웅장해 보인다. 보통은 크면 아름답기 어려운데 영남루는 위풍당당하면서도 아름답다.

     

    (전략) ~ 책상만이 아니었다. 옛날 사람들은 무엇이든 손으로 문지르고 닦아서 광택을 내게 하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청동 화로나 놋그릇들을 그렇게 닦아서 길을 들였다. 마룻바닥을, 장롱을 그리고 솥을 그들은 정성스럽게 문질러 윤택이 흐르게 했던 것이다. 거기에는 오랜 참을성으로 얻어진 이상한 만족감과 희열이란 것이 있다. ~ (중략) ~ 아들이여, 우리도 이 생활에서 그런 빛을 끄집어 낼 수는 없는 것일까? 화공약품으로는 도저히 그 영혼의 광택을 끄집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투박한 나무에서 거친 쇠에서 그 내면의 빛을 솟아나게 하는 자는 종교와 예술의 희열이 무엇인가를 아는 사람이다.

    (이 어령의 수필, <삶의 광택> 중에서)

     

    반지르르 윤기가 도는 영남루의 그 너른 마룻 바닥은 아름답다 못해 감동적이기 까지 했다. 부엌의 무쇠솥은 어머니의 행주질로 언제나 반지르르 윤기가 흘렀다. 손길이 내는 그 윤기. 빛나지 않으면서도 빛나는 그 아름다움은 오래도록 우리의 가슴을 데운다. 사람의 손때, 발때가 묻어 윤이 나는 마룻바닥의 광택은 그 어떤 화공약품으로도 낼 수 없는 생활의 빛이요 아름다움이다.

    문화재 관리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 누각이든 집이든 사람이 없으면 앙꼬 없는 찜빵일 뿐이다. 사람의 숨결이 늘 가득하고 사람의 손때로 빛나게 해야 한다. 영남루는 먼지 뒤집어 쓴 채 사람들과 떨어진 골동품 같은 문화재가 아니다.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의 손 때로 매일 매일 싱싱하게 살아나고 반지르르 윤기가 흐르는 살아있는 문화재다. 이른 아침인데도 할머니 세 명이 마루에 앉아 아들 자랑이 늘어지고 있었다.

     

    영남루가 아름다운 이유 2

     

    영남루로 올라가기 위해 언덕 비탈길 계단을 오른다. 화강암으로 정성스레 쌓아올린 계단이었다. 수십계의 수평 계단이면서도 맨 아래에서 맨 위 까지 지그재그로 경사로를 낸 계단이다. 수평선과 사선이 반복적으로 교차하면서 계단도 아닌 것이 길도 아닌 것이 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아름다운 계단이 되기도 하고 아름다운 길이 되기도 한다. 휠체어를 타거나 자전거를 끌고도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계단 속에 길을 내 준 것이다. 보다 약한 이를 배려하는 그 마음이 아름답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조화롭지 아니한가? 한문 사람 人 자는 두 사람이 서로 기대는 형상을 하고 있다. 사람은 그렇게 함께 살아가는 동물이다. 함께 사는 것이 아름답다.

     

    ~ (중략) ~
    옛날 사람들은 흥정은 흥정이요 생계는 생계지만, 물건을 만드는 그 순간만은 오직 훌륭한 물건을 만든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그렇게 순수하게 심혈(心血)을 기울여 공예(工藝) 미술품을 만들어 냈다. 이 방망이도 그런 심정에서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청년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아름다운 물건이 탄생할 수 있담."하는 말로 바뀌어 졌다. ~ (중략) ~
    (윤 오영의 수필, <방망이 깍는 노인> 중에서)
     

    누구였을까? 맨처음 이런 아름다운 마음을 낸 이는? 그리고 누구였을까? 이렇게 아름다운 계단을 쌓은 이는?

     한 치도 빈틈이 없다. 한 발 한 발 오를 때 마다 장인의 정성과 손맛이 느껴지는 우리 시대의 명품 계단이었다. 돈 받은 만큼 일하는 쟁이라면 절대 이렇게 아름다운 계단을 만들지 못했으리라.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왔던 스페인 광장의 계단이 아름답다지만 내 눈에는 이 계단이 작지만 더 아름다워 보인다.

    걸어오르는 이가 미끄러지지 말라고 계단은 거칠게 마감을 했다. 그러나 휠체어를 타고 오르는 경사로는 힘이 덜 들라고 바닥을 매끄럽게 마감을 했다. 신문에 한 번 나 본 일 없고 사람들의 눈길 한 번 제대로 받은 적 없지마는 이런 계단이야 말로 우리 시대의 문화재로 남을 수 있는 명품이 아닐까? 허명이 판을 치는 세상에 설계하고 시공한 이의 이름 하나 찾을 수 없는 계단이지마는 나는 이 무명의 계단에 최대의 찬사를 바치고 싶다.

     

     

    출처 : 영남루가 아름다운 이유
    글쓴이 : 소한재 원글보기
    메모 :

    '살며 생각하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도의 장례  (0) 2009.10.12
    낡아가는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0) 2009.09.08
    김대중 대통령의 장례를 지켜보며...  (0) 2009.08.23
    매화서옥도 감상  (0) 2009.07.18
    청자투각화병을 사다  (0) 2009.06.26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