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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 2% 부족할 때카테고리 없음 2011. 7. 4. 22:49
박수, 2% 부족할 때
'바이올린의 여제'로 불리는 안네 소피 무터의 지난 2008년 내한공연. 나무랄 데 없는 훌륭한 연주였다. 그런데 악장마다 청중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참다 못한 안네 소피 무터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쉿! 러시아의 명 피아니스트 리히터는 모스크바 공연에서 1악장이 끝났는데 여느 때와는 달리 박수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청중들이 전혀 음악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나’ ‘분위기가 썰렁했다’고 회고했다. 명지휘자 베르나르트 하이딩크는 청중들은 자주 차이콥스키의 비창 교향곡 3악장이 끝난 뒤 박수를 치며 심지어 뉴욕에서는 코트를 입고 나가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불평한 적이 있다.
가끔 클래식 콘써트에서 박수가 너무 일찍 터져 나오는 바람에 감동의 순간을 망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정작 박수를 쳐야 할 때는 안치고, 치지 말아야 할 때는 쳐서 따가운 눈총을 받는 경우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에티켓은 '그 사람'을 드러내는 유무형의 인격적 표상이다. 남을 위한 배려라고는 하지만 결과는 ‘나’를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부메랑과도 같다. 박수는 아무 때나 자신이 치고 싶을 때 치면 된다 그러나 아무 때나 치면 클래식 음악의 흐름을 끊게 할 수도 있다. 한 스테이지가 끝나면 지휘자는 잠시 무대 뒤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다. 이것은 다른 음악의 분위기로 바꾸기 위해 연주를 잠시 멈추는 것이다. 간혹 한국 가곡이나 잘 아는 곡이 나오면 반가운 기분을 자제하지 못하고 마구 박수를 보내는 관객이 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 박수를 쳐야할까?
고향곡, 협주곡, 소나타 등 여러 악장이 모여 하나를 이루는 작품의 경우는 끝악장을 완전히 마친 뒤에 박수를 친다. 마지막 화음이 완전히 사라진 다음 박수를 치는 것이 에티켓이다. 한 곡에 2-5분 정도 밖에 소요되지 않는 가곡 연주회의 경우에는 몇 곡을 한 데 묶어 1부 또는 첫 스테이지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럴 때는 연주 프로그램을 참조, 한 묶음이 끝난 뒤에 박수를 치는 것이 좋다. 오페라나 뮤지컬 등에서는 막이 내릴 때 마다 박수를 친다. 아리아나 중창, 합창 등 중요한 부분이 끝날 때도 박수로 감동을 표현해주는 것이 좋다. 만약 프로그램도 없고 곡이 언제 끝날 지를 잘 모른다면 바로 연주자가 인사할 때 박수를 치면 된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에서 손을 완전히 떼거나 바이얼니스트가 바이얼린을 완전히 내려놓을 때 그리고 지휘자가 지휘봉을 완전히 내리고 돌아서서 인사할 때 그 때 치면 된다.
연주자를 배려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감상자(관객)다. 어떤 연주자가 마지막 음을 가능한 한 여리게 연주하려고 감정을 잡고 있었다. 그 때 그만 박수가 터져 나온 것이다. 그 순간에 연주자는 감정이 깨어져 버린다.
농작물이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먹고 크듯이 무대에 서는 사람은 관객의 박수를 먹고 산다. 박수에 따라 연주자가 신나기고 하고 박수에 따라 연주자가 좌절하기도 한다. 박수는 잘 치면 더 없는 격려가 되지마는 잘 못 치면 실망이 되기도 한다. 박수의 영향력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큰 힘을 발휘한다. 박수에 의해서 그 공연이 성패가 가름나기도 한다. 오죽하면 R(Royal)석을 알아서 박수치는 자리라고 하겠는가? 그만큼 앞자리의 반응은 무대로 바로 전달되는 만큼 특히 중요하다.
상습적으로 중간에 박수가 터지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비창이다. 웅장하고 박력 넘치는 3악장이 끝난 뒤 4악장이 비탄으로 이어지는 그 사이에 관객들이 그만 그 침묵을 참지 못하고 박수를 치는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악장이나 한 묶음이 다 끝나고 박수를 쳐야 한다는 것은 원칙일 뿐이다.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가령 길고 화려한 카텐차(독주자의 무반주 솔로)가 있는 협주곡의 1악장이 끝난 뒤 박수를 치지 않는 것도 부자연스럽고 오히려 실례가 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무대 위의 열기는 뜨거운데 객석의 반응은 지나치리만치 냉정해서도 곤란하다.
음악은 총소리가 아니다. 음악은 종소리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상기하자. 총소리는 탕! 그 순간에 결정 난다.(맞았던지 안 맞았던지) 그러나 종소리는 치는 순간은 시점에 불과하다. 종소리의 승패는 치는 순간에 결정나는 것이 아니라 그 울림이 얼마나 오래 가느냐에 달려있다. 여음이 완전히 사라져야 종소리가 끝나는 것이다. 음악에는 어느 정도 여운이, 감동의 울림이 있기 마련이다. 수준 높은 무대일수록 그 감동의 울림은 더 오래 갈 것이다. 그 감동의 여운이 끝난 다음 박수를 쳐야 한다. 연주가 끝나자 마자 치는 박수는 마치 제야의 밤, 서른 세 번의 보신각 종을 칠 때 세른 세 번째 종이 땡! 울리는 순간에 환호하는 것처럼 멋이 없다. 대엥~~~~~~ 그 기인 여음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야 그 아름다운 종 소리를 만들어준 장인에게 기인 박수를 보내자. 기인 감동적 울림을 준 연주자에게 지휘자에게... 악단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자. 마지막 음의 여운이 사라질 때 까지 들어주는 기다림의 미학, 배려의 미학 그것이 클래식이 지닌 향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