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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메일 그리고 나의 답신살며 생각하며 2005. 11. 9. 23:48
캐나다에 가서 사는 친구에게서 메일을 보내왔다.
지난 번에 아버님 상을 당해 와서 빈소에서 잠간 얼굴을 본 친구다.
사십구제때 다시 오겠다고 한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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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사랑을 잃었습니다
아니, 지독한 隻愛를 잃었습니다얼마나 일방적인 사랑이었는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그 흔한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해보지도 못하고
고맙다는, 감사하다는
그 쉬운 표현 한번 하지 못하고주저 주저하고
짐짓 모른 체하고
혼자서 위안하고
그렇게 시늉만 하고 있는 사이내 사랑에 대한
기대도 접고
바램도 거두고
기다림 멈추고오랫동안 한결같이
그냥 조용히 사랑해줬던 것처럼
그렇게 떠나 갔습니다이런 날이 꼭 올지
분명 알고 있었지만나에게는 이런 일이 결코 안 일어날 것이라는,
영원히 그렇게
날 바라 보고만 있을 거라는허황된 생각을 깨우쳐주는 것 조차
마음이 쓰였는지,섭섭함이라도 한마디 하고 싶었을 텐데
그 동안 뱉지 못한 꾸짖음도
겹겹이 가슴속에 쌓여져 있었을 텐데누군가 알게 되면
그게 나에게 상처로 돌아올까
더더욱 마음 쓰여진한 어둠 깊은 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혼자서
아쉬움 추스리고
미련 챙겨
아무 말 남기지 않고 떠났습니다서늘한 기운이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몸을 뚫고 지나갑니다
몸 이곳 저곳에 구멍이 숭숭 뚫립니다내 몸을 온통 구멍으로 파헤쳐진다 한들
그 자리에 떠난 隻愛를 찾을 수 없겠지만그 휑함을 이제라도
절실하게 느끼고 싶어
또 다시 바람을 향해 몸을 돌립니다
벌써 이번 주말이 아버지의 사십구재야
조카의 꿈에 아버지가 나오셔서
'아주 좋은 곳에 편안하게 잘 있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는 데에 큰 위안을 받고 있어많이 힘들었던 순간이었지만
멀리서 와준 최교수가 함께 있어
정말 큰 위로가 됐어 고마워건강 잘 챙기고 잘 지내
또 연락할께나는 오늘 친구에게 답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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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구나.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세상은 잘도 돌아간다.
지난 주말이 벌써 사십구제였구나.
옛 어른들은 말하셨지. 天崩이라고.
부모님 상을 당하는 것은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지.
그런 슬픔의 벼랑 끝에 서있는 친구에게
먹고 산다. 먹고 살아야한다는 이유로
잠시 얼굴 내밀고 돌아선게 전부였구나.
친구가 온 줄 알고
그래서 여기 와서 지친 몸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쉬어가라고 전화했다가
못 온 것을 알았다.
나의 전화가 오히려 어머니에겐
더 큰 슬픔과 아쉬움만 되새김질하게 한 것이
아닌가 싶어 못내 가슴이 무겁다.
친구야
요즈음은 어떻게 지내는지?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스산하게 불면서 더욱 친구생각이 난다.
그러면 내 마음은 짐작도 잘 안돼는 캐나다 어디쯤에서 서성인다.
어제는 아내 손잡고 백양사를 다녀왔다.
단풍이 너무 곱더라.
한번 온다던 윤사장은 바쁜지 이 가을이 다가도록 아무 소식이 없다.
또 연락하자.
소한재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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