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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오는 봄을 맞으러살며 생각하며 2006. 3. 10. 00:17
강진 백련사 - 다산초당 - 석문 - 점심식사(흥진식당) - 세심정 - 청자박물관 - 강진만 해안도로 - 마량항 - 소한재 - 집
오늘 아침 우리 아파트 베란다에 있는 철쭉이 첫 꽃몽오리를 터뜨렸다.
아, 봄이다. 妙用時水流花開라더니 차 마시는 사이 물은 흐르고 꽃이 피었구나.
우리 집에 처음 찾아온 화신 때문에 남도의 봄빛이 보고 싶어졌다.
바다를 건너 달려온 봄이 제일 먼저 상륙하는 곳, 강진 땅이 그리웠다.
지금쯤 백련사의 장엄한 동백 숲에는 동백이 어둑어둑한 그늘 속에 누워 핓빛을 토해 내고 있으리라.
이랴 이랴 -아. 언제봐도 빠지지 않을 수 없는 월출산도 지나고 풀티재도 넘고...
한달음에 다산 선생 동상이 어서 오라 손짓하고 선 강진 땅 어귀에 닿는다.
강진의 봄빛을 보러왔으면 '모란이 지기 까지는'의 산실, <영랑생가> 부터 들러야 하지만
오늘은 만덕산 기슭의 수정사 부터 찾는다.
뭐 하나 볼품 없는 절이지만 거기서 내려다 보는 전망 하나는 그만이라
숨쉬기 운동 하기 좋은 장소이기 때문이다.
강진이 저만치 발 아래 놓이고 완전한 녹색의 강진 들이 발 아래 펼쳐진다.
내려와 백련사를 가는 길 중간에 철새들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 있다.
강진만 개펄에 앉아있는 철새들이 너무 멀어 잘 보이질 않는다.
점점이 검은 깨를 뿌려놓은 것 같다.
그리고 어스름녁이 아닌 지라 철새들은 움직이지도 않는다.
대낮에도 어둑어둑한 동백림...
만경루 앞에 서있는 잘 생긴 배롱나무 한 그루...
찻집에 앉아 내다보는 구강포...
내가 백련사에서 좋아하는 풍경이다.
다산초당으로 가는 산길...
야생차 나무가 널려있는 그 길을 걷는다.
전에 보다 더 넓히고 계단을 만들고 나란히 말뚝을 받고...
깨끗하게 손을 보았다.
번듯한 와가인 다산초당도 그렇고
구강포를 내다보고 선 아름다운 정자 천일각도 그렇고
과공도 비례라더니 그 사이에 이 길 하나가 더 늘었구나.
이 길은 다산 초당의 다산 선생과 백련사의 혜장 선사가
오가면서 우정과 학문을 나누었던 길이다.
이런 길은 토끼 길 같은 흙길 그대로 두는 것이 최고이련만
뭔가 세련되고 현대적으로 만들지 않으면
위대한 인물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건지...
이런 아름다운 사연이 있는 길엔 그저 <다산의 길>이라든지... <생각이 흐르는 길>이라던지..
그럴 듯한 이름이나 하나 지어주면 좋으련만...
그대로 버려두는 것이 최고일 때도 있는 법인데...
천일각이나 다산초당, 동암... 반지르 윤이 나는 마룻바닥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누구인지는 모르나 관리하는 손길이 참으로 곱고도 매섭다.
다산이 흑산도에 유배간 형님을 그리며 눈물 지었던 그 자리에 서있는
천일각에서 내다 보는 구강포 풍경도 환상적이다.
둑을 만들고 논을 만드느라 그 넓은 갈대밭이 사라져 버린 것은 두고 두고 아쉽지만...
그래도 천일각에서 내다 보이는 강진만 풍경은 언제 보아도 황홀하다.
여기에 앉으면 나는 다산의 슬픔이나 고독은 한순간에 까맞게 잊어버린다.
백련사를 떠난 발길은 석문에 닿는다. 석문의 경이로움은 아는 이가 별로 없다.
석문 중턱에 멋있는 정자가 새로 앉았다. 그 정자로 오르는 길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
큼직큼직한 바윗돌을 놓았는데 올라가면서 보면 거친 돌너덜 처럼 보이나
올라온 길을 내려다 보면 반듯하게 잘 정비가 된 길로 보인다.
인공미와 자연미의 조화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배꼽시계가 점심시간이 지났음을 알려온다. 강진에 왔으니 맛있는 한정식을 먹어야지..
가지고 온 여행 안내 책에 나와있는 흥진식당을 찾아간다.
그리고 모처럼만에 두 사람이 마주 들고온 거창한 밥상을 받는다.
이제는 강진만 바다를 끼고 달리는 해안도로를 따라 마량으로 간다.
마량으로 내려가는 육십리 바닷길 곳곳에 나그네가 여수를 달래라고 정자를 세워두었다.
세심정... 그 통속한 이름은 별로 지만 거기서 바라보는 바다는 아름다웠다.
마치 포기 필터를 끼운 듯 히뿌연 하늘... 맑은 날도 아니고 흐린 날도 아니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물빛이고 어디 까지가 하늘 빛인지... 하늘도 바다 같고 바다도 하늘 같다.
마량항에서의 일몰을 맞추려면 청자박물관에 들려도 좋은 시간이다.
도공들의 작업 현장을 바로 옆에서 구경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청자박물관은 전에도 늘 그랬듯이 찾는 이가 너무 없었다.
그렇게 멋있는 박물관인데 창구에 앉아서 표 받는 이의 일당이나 나올까 걱정된다.
그러니 판매장도 초래해졌고 찻집도 문이 닫겨 있었다.
그 앞의 가계들도 하나 같이 문을 닫고 있었다.
마량항이다. 아내가 늘 와보고 싶어하던 곳이다. 한 삼년은 된 듯 하다.
바로 옆에는 병영성벽, 바로 앞에는 빽빽한 상록수림이 장관인
까막섬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차를 세운다.
그 사이 마량항은 전보다 훨씬 멋있어 졌다.
바다 위에 공연장을 갖춘 데크가 만들어졌고 바다를 따라서
방부목을 깐 멋진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곳곳에서 지금도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방파제 끝에 서있는 등대에 앉아 항구를 드나드는 배들을 바라본다.
고기 비늘 처럼 반짝이는 햇살... 찰랑이는 물소리... 옷깃을 흔들고 가는 바람.... 아 좋다!
귀로에 소한재엘 들러 불 피우고 놀다.
밤 10시가 넘어 집에 돌아오기 위해 문을 잠그고 대청 마루의 전등을 껐는데...
아하 - 온마당 하나 가득 달빛이 넘실대고 있지 않은가?
그 달빛 때문에 한참이나 마당 가운데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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