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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들강에서
    살며 생각하며 2006. 3. 11. 00:15
     

    봄이 오는 강을 보러 아내와 드들강으로 갔다.

    안개가 자옥하게 피어오르는 강 마을 풍경은 선경이었다.

    산도 강도 전설처럼 안개 속에 잠기어 가고

    소리 없이 흐르는 강물에 배를 띄우고

    낚시질 하는 풍경은 그대로가 ‘시가 있는 풍경’이었다.

    가볍게 나선 길이라 카메라를 챙겨 오지 않음을

    나는 몇 번이나 후회해야 했다.


    차 한대가 겨우 지나갈만한 흙길로 들어섰다.

    차 창 밖으로 손을 내밀면 강물에 손을 담글 수 있을 것만 같다.

    롤러 코스터를 타는 듯이 심하게 요동치는 길...

    길 옆의 나무 가지들이 때릴 듯이 차를 긁고 지나간다.

    차 안에서도 계속 흠칠흠칠 놀라면서 이리 저리 몸을 피해야 했다.

    인적이 드문 길... 어디로 이어지는 지도 모르고 가는 길.

    가도 가도 나뭇가지와 풀들이 차 바퀴를 잡는 그 길은 끝날 줄을 모른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면서 간다던 광고 카피 그대로다.

    내가 가고나면 길이 되는 길이다. 

    차에게는 참으로 미안할 길이다. 

    홍수때 걸린 쓰레기들이 을씨년 스럽게

    나무 가지에 걸려있는 풍경은 괴기스럽기조차 하다.

    이윽고 작은 둔덕이 앞을 가로 막는다.

     

    20여 미터만 더 가면 길인데...

    길은 거기서 끝이었다.

    트럭이거나 짚차면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승용차로 넘다가 바퀴가 빠져 헛바퀴라도 도는 날에는

    이 외진 곳 까지 레커 차가 오기도 힘들겠다 싶어

    눈물을 머금도 돌아설 수 밖에 없엇다.

    드들강 산책이나 하려던 것이

    드들강 대탐험이 되고 말았다.


    힘겹게 갔던 길을 되짚어 나온 우리는 강둑에 차를 세운다.

    그리고 다시 걸어 그 길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갔다 왔다.


    (강가의 솔밭에서)

    드들강변의 하얀 모래펄이 아직은 살아 숨쉬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모래 뒤쪽의 푸른 솔밭이 물빛과 함께 초록빛이다.

    청산녹수의 맑은 산수가 좌우로 펼쳐졌다.

    물고기 뛰노는 맑은 경관이 길손들의 정신을 빼앗는다.

    울창한 솔밭 한 가운데 정자가 숨은 듯이 서있었다.

    지암 윤선기가 지팡이 짚고 거닐 던 탁사정이다.

    사람 하나 없는 강가의 솔밭

    검은 소나무 사이로 여울지며 흐르는 강물을 바라 보고 있었다.


    강과 정자하면 나주출신의 나덕명이 떠오른다.

    그는 임진왜란 때 함경도 변방으로 피난 간 두 왕자

    임해군, 순화군을 적지에서 구출해낸 인물이다.

    임진왜란이 평정되고 난 다음 높은 벼슬길에 오를 수 있었지만

    정자를 짓고 시를 쓰며 자적했다.

    순수한 자연을 찬탄한 그의 시가 드들강과 잘 어울린다.


    강정즉사(江亭卽事)             강가 정자에서

    풍정강미초(風靜江湄草)      바람 자니 강가 풀 조용 해 지고

    어경월하파(魚耕月下波)      고기는 달 아래 물결을 가르도다.

    야한수불매(夜寒愁不寐)      밤이 추워 근심에 잠 못 이루는데

    연외기어가(烟外起漁歌)      안개너머에서 어부의 노래 소리 들리네.


    오후 시간에도 안개는 계속되었다.

    풍광도 안개 속에 잠기어 가고

    나도 그 풍광 속에 잠기어 가는 한나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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