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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환아 보아라
아버지는 지금 너의 넷째 큰 아버지의 갑사를 위해서
대구에 와서 너에게 이 편지를 쓴다.
갑사란 돌아가신 분이 환갑을 맞아 지내는 매우 특별한 제사다
살아계신다면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가족과 친척들이 모여
축하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나눠먹고 그래야할 날이지만
망인의 회갑을 맞아 지내는 제사는 미망인이나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잊혀진 상처를 다시 헤집는 슬픈 기념일이지.
기뻐해야할 날에 기뻐할 수 없는 슬픔...
우리는 왜 사는가?
어떤 의미에서는 죽기 위해서 산다고 해도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생노병사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이 어디 있을쏘냐?
세상의 모든 것은 소멸하는 것.
누구나 한번은 죽는 것...
가족과 친구들...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세상과 이별해야하는
그 날은 누구에게나 반드시 온다.
우리는 영원히 사는 것 처럼 생각하지만 영원히 사는 인간은 아무도 없다
문제는 가야할 그 날이 언제인가를 모른다는 것 뿐.
오늘은 우리 생의 마지막 날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언제나 내일이 있다는 생각으로
정말 중요한 일들을 자꾸 미루고 있다..
아버지도 그런 사람중에 하나라고 믿고 있다.
정말 중요한 일 중의 하나가 사랑하는 것이다.
오늘이 우리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영어 단어를 외우겠느냐?
친구를 미워하겠느냐?
컴퓨터 게임으로 밤을 지새우겠느냐?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너의 청춘이 너무 아릅답구나
너는 화장품 신세를 지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지 않느냐.
그러나 가끔 한번씩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이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구나.
그러면 어머니에게 안부 전화를 하는 것도
기원이가 너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도
훨씬 쉽게 깨닫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 생각은 오늘이 얼마나 소중한 날인지도
새삼 깨닫게 해줄 것이다.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싶어했던 바로 그 날이니까.
너가 중학교 일학년 들어갔을 때
넷째 큰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자났구나
지금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산야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무덤들을 보면
그리고 지금은 여기 없는 그 분들을 생각해보면
우리의 오늘이 미워하고 싸우고 낭비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날들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밤이 늦었구나
잘 자거라.. 꿈 속에서 광주행 기차를 타고 달리고 있는지도 모르지
우리가 매일 밤 잠 자는 것은 죽음이라는 이름의
영원한 잠을 위한 연습은 아닐까?
오늘밤은 쉽게 잠 들지 못할 것 같구나.
너를 자랑스러워하는 아버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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