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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선’에서 ‘푸른길’로
    노변정담(爐邊情談) 2006. 7. 13. 05:02
     

    ‘폐선’에서  ‘푸른길’로

       

     

    독일 뮌스터시는 프로메나데라고 부르는 아름다운 푸른길로 유명하다. 도심 한가운데 빙 둘러 있는 4km에 지나지 않는 이 길은 산책로와 자전거도로로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이 곳은 원래 중세시대 성벽이 있던 곳이었다. 다른 도시의 성벽은 대부분 주택지나 도로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도시에서는 지금까지 녹지대로 잘 보전되어 있다. 이는 18세기 중반 당시 뮌스터시 퓔스텐베르그 영주의 현명한 결정 덕분이다.    


    그러나 광주의 폐선부지를 ‘푸른길’로 조성하자는 결정은 현명한 지도자 덕분에 탄생된 것이 아니다. 그런  결정을 이끌어내기까지 지역사회의 시민단체, 전문가, 주민들의 애정 어리고 피땀 어린 노력이 있었다.


    폐선 푸른 길은 도시를 벗어나면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녹지가 아니다. 삭막한 콘크리트 도심 속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는 점에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그래서 소중하다.

    폐선 푸른 길은 빼어나게 아름다운 그러나 주말 또는 1년에 한 두 차례밖에 볼 수 없는 멀리 떨어져 있는 녹지가 아니다. 직장 가는 길에. 학교 가는 길에, 가족들과 함께 산책 가는 길에 슬리퍼를 신고 나설 수도 있는, 그래서 자주 접하는 이웃집 아저씨처럼 편한 일상생활 속 녹지다. 그래서 가치가 더욱 빛난다.


    폐선 푸른 길은 동네 어귀 어딘가에 버려져 있다시피 하는 조각난 작은 공원이 아니다. 시내 주요 지점을 대부분 관통하는 11km에 이르는 귀중한 선형 녹지다. 그만큼 시민들은 어디서든 쉽게 푸른 길에 닿을 수 있다. 그래서 폐선 푸른 길은 무등산 못지 않은 소중한 광주의 자산이다.

    폐선 푸른 길은 인간과 자연을 연결시키는 중요한 매듭이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가득 메워진 삭막한 도시 속에서 풀과 꽃과 나무를 접할 수 있고 나비와 새를 불러 모을 수 있는 생명의 고리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실험실과 같은 존재다.


    폐선 푸른 길은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키는 매듭이기도 하다. 철도로 인해 단절되었던 양쪽 지역 주민을 하나로 모아주는 연결고리기도 하다. 과거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기피하던 고독과 소외의 철도부지가 이제는 사람을 끌어들여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화합과 통합의 새로운 명소로 기대되고 있다.


    그 곳에서 사람들은 조깅하고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자전거를 탄다. 거리음악회가 열리고 거리전시회가 열린다. 채소밭과 작은 동물의 우리가 아이들을 반기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폐선 푸른 길은 새로운 접속이요 하나의 전환이다. 과거 한 눈 팔 새 없이 달려 온 수 십 년간의 개발만능주의시대를 접고 내 집 주변의 삶의 터전에 관해 새삼스레 돌아보는 새로운 시작이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태봉산을 무너뜨리고 경양방죽을 메워버린 야만의 시대에서 이제 조금이라도 참회하는 마음으로 도시의 한 조각이나마 자연의 모습으로 되돌려 주는 일을 시작하려 한다.


    폐선 푸른 길 가꾸기는 단지 도시 속에 공원 하나 만드는 단편적인 문제에서 벗어나 하나의 생명운동이다. 사람의 몸에 다만 몇 분이라도 공기가 들어가지 못하면 숨을 거두듯이 도시도 맑고 깨끗한 환경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죽은 도시나 다름 없다. 그런 의미에서 폐선 푸른 길은 도시 속에 생명의 숨길을 만들어 주는 생명 찾기 운동이다.                                             조 진상<동신대 조경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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