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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하는 아들과 함께 떠난 여행길에서노변정담(爐邊情談) 2009. 7. 30. 12:12
여량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발목 잡는 풍경. 강은 산을 넘지 못하고 산과 강이 서로 안고 도는 풍경. 산은 높고 강은 깊고... 강원도다운 풍경이다. 논밭이 있기 어려운 온통 산이지마는 아우라지강이 있는 그 부근은 제법 너를 들이 있어 식량이 남았다고 한다. 그래서 여량이라는 이름은 거기서 얻은 것이다.
구절천과 골지천이 만나는 합수머리 강가에 솔밭에 댕기머리를 곱게 드리운채 하염없이 강을 바라보고 서있는 아우라지 처녀상이 서있다. 이 곳이 바로 정선 아리랑의 고향, 아우라지다. 두 물줄기가 하나로 어우러진다고 이름조차 아우라지다. 줄 배나 징검다리 돌 몇 개면 족할 이 곳에는 시멘트 다리가 놓였고 강가에는 서양식 공원을 만들어놨다. 지나침은 차라리 모자람만 못하다는 것을 왜 모르는 것일까? 허긴 섶다리를 잔디밭에 만들어놓은 공무원의 감각이니 무엇을 더 바라랴?
구름도 쉬어 간다는 몰운대. 구비구비 정선 소금강을 돌아 화암팔경의 일경이라는 몰운대를 찾아간다. 넓은 바위와 늙은 소나무 그리고 맑은 시냇물이 어울려 씻은 듯 맑은 풍광을 그려낸다. 저 고사목이 되어버린 소나무는 죽어서도 몰운대의 가장 중요한 테마가 되고 있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더니.. 저런게 영원한 삶이 아닐까?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가지고 있는 태백의 정암사.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왔다는 마노석으로 쌓은 수마노탑 속에 진신사리가 들어있다고 한다. 설악산 봉정암, 양산 통도사, 영월 법흥사, 평창 상원사와 함께 흔히 우리나라 5대 멸보궁이라고 말한다.
강원랜드 안에 있는 명품 한정식집, <운암정> 영화와 드라머 <식객>의 무대이자 촬영장소이기도 한 이 곳에서 제일 싼 메뉴가 3만 5천원. 비싼 것은 몇 백만원 짜리도 있다고 한다. 내 간장으로는 그런 거 먹고 도저히 소화해낼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구경만.... ㅎㅎㅎㅎㅎ
내셔널 트러스트의 <동강舍廊>이 있는 제장 마을에서 만난 동강 풍경. 여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안동 하회나 예천 의성포의 물도리는 물도리도 아니드래여." 강은 산을 안고 세 번 네 번... 을 돌아간다. 그야말고 산태극 수태극이다. 강가에 앉아있는데 건너편에 사람이 개미 처럼 보인다. 우리의 산수화에서는 언제나 저런 사이즈로 사람이 등장한다. 자연에 깃들어 살고자 했던 선인들의 생각을 여기오면 저절로 보이는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도 자꾸 돌아보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아, 다시 가고 싶다.
왕에서 노산군으로 그리고 다시 폐서인으로 강등된 단종이 유폐되었던 곳, 청령포. 이 곳에 온 지 두 달여 만에 홍수가 나서 영월 읍내에 있는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기고 거기서 결국 사약을 받는다. 영월에 오면 단종과 김 삿갓으로 더 유명한 방랑시인 김 병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의금부도사로 사약을 가지고왔던 왕 방연은 돌아가는 길에 물가에 앉아 눈물의 시 한수를 남긴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물 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놋다.."
영월 서쪽을 흐르는 서강 또한 곳곳에 절경을 만들어 놓고 있으니 그 중 한 곳이 이 곳 선돌이다.
한반도 지형으로 유명한 선암마을. 이 곳에서 뗏목을 타고 저 강을 흘러갈 볼 수 있는 모양인데 지난 장마로 지금은 중단 상태란다.
물이 빚은 자연의 예술, 요선암과 요선정. 신선들이 노닌다는 이름 그대로 절경이다. 길을 물었더니 어떤 아저씨가 "요 뒤로 넘어가보래요. 한 마디로 끝내줘요." 요강바위로 유명한 순창의 장구목에 가도 이런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역시 5대 적멸보궁 중 하나인 영월 사자산 법흥사. 절을 둘러싸고 있는 풍광이 너무 아름다웠지만 경내는 어딘가 모르게 어수선한 분위기. 자연이 하는 일과 사람이 하는 일이란 늘 이런 차이를 만들게 마련이다. 잘 만 다듬으면 소위 명품 절집이 될 것 같은데..
세조와 다산과 인연을 맺고 있는 남양주 수종사. 이곳에 오르면 두물머리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다산의 집 여유당과 묘소가 이 곳에서 지척지간이다. 다산은 강진에서의 18년 유배에서 풀려나 이곳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 수종사를 자주 오가면서 차를 즐긴다. 수종사의 다실 삼정헌을 보기 위해 수종사엘 오른다. 그 다실에서 내려다 보이는 악 소리 나는 풍경 때문에 차맛을 놓칠 지경이다. 모르고 차를 가지고 올랐다가 길이 어찌나 가파르고 험하던지 후회막급. 수종사를 갈 때는 두 다리로 한 발 한 발 걸어서 가시라.
남한강과 북한강이 하나로 만나는 양평 두물머리. 드라머나 영화에서 자주 봤던 두물머리의 느티나무를 보러 간다. 숲의 터널을 이루고 있는 집입로는 아름다우면서도 불편한 길이었다. 나만의 편견일까? 서울에서 가까워서 그런지 왠지 때가 묻은 풍경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강가의 명소, 힐 하우스. 아름다운 처녀 선생님과 이 곳에서의 멋진 점심 식사는 이 번 여행에서 받은 뜻밖의 보너스.
뒤로는 나즈막한 푸른 야산을 앞으로는 푸른 강물을 바라보고 서있는 여주 신륵사는 나에게는 선암사, 송광사, 부석사와 함께 참으로 아름다운 절집중 하나이다. 옛날 회사에 다닐 때 내 짝꿍 디자이너와 땡땡이를 쳐서 이 곳 남한강가의 원두막에 올라앉아 밤이 으슥하도록 술을 마셨던 추억의 현장인데 지금은 그 때의 포플라 나무도 원두막도 허름한 여인숙도 모두 사라지고 없다. 신륵사에 가면 강 가 바위 위에 앉은 정자, 강월헌에 올라 여강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잊지 마시라. 그 강월이 나옹선사의 호였다는 사실도.
명성황후 생가터에 복원해 놓은 감고당 정경. 명성황후는 능 참봉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여덟살 때 까지 이곳 여주에서 살았다. 그리고 서울 안국동 지금의 덕성여고 자리에 있었던 감고당으로 이사를 갔다. 거기서 흥선군 이하응의 집이었던 운현궁은 지호지간의 거리. 대원군의 부인이었던 민씨 부인의 친척이었던 관계로 어렸을 적 부터 운현궁에 드나들었는데 그런 인연으로 대원군의 며느리로 선택되고 급기야는 한 나라의 국모의 자리에 까지 오르는 광영을 누리게 된다. 허나 지금의 경복궁 안 옥호루에서 일본 낭인들에 의해 무참하게 시해 당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되는데... 이 때 암호명이 <여우사냥>이었다니... 한 나라의 국모를 살해했다는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우리와 일본은 같은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불구대천의 원수인데.... 역사로 넘기기엔 그 아픔이 너무 크다.
원주로 돌아오는 길에 들린 흥법사지. 섬강을 바로 앉은 넓은 절터는 대부분 밭으로 뺏기고 지금은 소박한 석탑 한 기와 진공대사 부도비의 귀부와 이수 그리고 여기 저기 흩어진 주춧돌 몇 개만 남았다. 어둠이 내리는 절 터에 혼자 서있으니 인생의 무상함이 뼛 속 까지 스며든다. 모름지기 폐사지는 어스름녁에 갈 일이다. 거기에다 하늘에는 조각달이라도 하나 걸려준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광주로 돌아가는 길. 단양팔경중 도담삼봉과 석문 그리고 청풍호반을 끼고 달리는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를 위해 우선 단양으로 간다. 삼봉 정도전에 얽힌 설화 때문인지 그 옆 언덕에는 정도전의 동상이 도담삼봉을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단양 사람들은 정도전의 호, 삼봉이 도담삼봉에서 유래되었다고 우기고 싶겠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각설하고... 나에게 도담삼봉은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올 때 중앙선 열차 안에서 언뜻 지나친 풍경이었다. 그 다음 부터 중앙선 기차를 탈 때 마다 도담삼봉이 비치는 차창에다 눈길을 주었지마는 오랜 기다림에 비해서 차창으로 볼 수 있는 도담삼봉은 너무나 짧았다. 홱 - 스치고 지나가는 그 풍경은 늘 가슴 아린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단양팔경중 3경인가? 옥순봉. 청풍나루에서 바라보이는 옥순봉 풍경이다. 퇴계가 단양군수를 할 때 아마 단양팔경을 선정한 것으로 아는데 관동팔경이나 단양팔경이니.. 가는 곳 마다 팔경을 자랑한다. 그 팔경의 원조는 중국의 소수와 상강 부근의 아름다운 경치 8개를 이르는 소상팔경이다. 우리가 본 산수화 병풍들은 알고보면 대부분 그 소상팔경을 그린 여덟폭의 소상팔경도였다.
여량역에 있는 버들치 카페. 구비 구비 정선 땅을 돌아드는 기차는 여기에서 멈춰선다. 전에는 강원도의 막장 구절리까지 들어갔으나 지금은 폐선이 되었고 그 폐선을 이용해 레일바이크 장사를 하는데 어찌나 인기가 있는지 비가 오는 날씨임에도 저녁 9시 까지 완전 매진이라 결국 발 길을 돌리고 말았다. 밤에 별이 쏟아지는 조양강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아들과 함께 그 레일바이크를 타보고 싶었는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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