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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하여/이어령수필 감상 2009. 9. 8. 23:40
온돌의 사랑
서양인들이 사랑을 난로불에 비긴다면 한국<동양>인의 사랑은 화로나 온돌에 비유할 수 있다. 활활 타다가 썰렁한 잿더미만을 남기는 그 '스토브'의 과열과 냉각....서구인의 사랑은 대체로 그와 닮은 데가 있다.
그것은 열병처럼 달아오르는 사랑이다. 라틴어로 '아모르'라고 하면 '사랑'을,'모르'라고 하면 '죽음'을 뜻한다. 서양인들은 사랑과 죽음에는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사랑'은 언제나 '죽음'과 짝지어 있다. 시뻘겋게 단 '스토브'와 썰렁하게 식은 '스토브'의 관계와도 같다. 불꽃과 함게 사랑이 시작해서 불꽃과 함께 꺼져버리는 사랑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사랑은 불타는 사랑이라기보다 불이 다 타고 난 후에 비로소 시작되는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재 속에 묻은 화롯불의 불덩어리나 불 때고 난 구들장의 온기 같은 것이다. 불꽃이 없는 화롯불과 온돌방의 따스함 속에는 지열地熱처럼 억제된 열정과 영원을 향한 여운같은 생명감이 있다.
겨울밤 싸늘하게 식은 화롯불을 휘적거려 보면 그래도 거기 몇 개의 불시가 싸늘한 재 속에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미지근한 구들장에 있는듯 남아 있는 온기는 바로 사람의 체온 같은 것을 느기게 한다.
사랑이란 말의 어원
대체로 한국인의 사랑은 재 속에 묻힌 불덩어리처럼 그리고 돌<구들장>속에 파묻힌 온기처럼 은밀한 법이다.
우리의 그 '사랑'이란 말은 본래 고어로는 '생각한다'는 뜻이었다. 생각하는 것이 곧 사랑이요, 사랑하는 것이 곧 생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격렬하고 노골적인, 행동적인 사랑보다는 언제나 마음속에서 샘솟는 사모의 정이 한국인의 기질에는 더 어울렸던 모양이다.
쉬이 덥지도 않고 쉬이 식지도 않는 그 사랑의 풍속은 엄격한 의미에서 애愛라기보다 정情이다.
서양사람들은 으레 사랑하게 되면 "아이 러브 유" 나 주 템므Je t'aime"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서구화한 오늘이라 할지라도 '사랑'이란 말을 직접 입 밖에 내는 일이 없다. 정철鄭澈의 유명한 <속미인곡續美人曲>에는 "반기시는 낫비치 녜와 엇디 다르신고"라는 영탄이 나온다.
사랑해도 , 미워해도 오직 '낯빛'으로 표현되는 은근한 정이다. '반기는 낯빛'으로 표현된 은근한 정이다. '반기는 낯빛'으로 그들은 사랑을 고백했기에 또한 그 '낯빛'의 사소한 변화에서 식어가는 애정의 슬픔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니 불꽃이 튀고 쇠가 녹아 흐르는 용광로의 사랑과는 그 비극의 도度에 있어서도 다르다. '베르테르'는 실연의 슬픔을 '권총'으로 청산했지만 한국의 '베르테르'들은 '권총'이 아니라 '베개'위에서 전전반측輾轉反側했다.
옛날의 이별가들이 모두 그러하다.<가시리>를 보라. <서경별곡西京別曲>을 보라. "잡사와 두어리마나난, 선하면 아니 올셰라"의 기분으로 그들은 떠나는 임을 고이 보내드렸다. 임이 저 강을 건너가기만 하면 번연히 다른꽃<여인>을 꺾으리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엉뚱하게 죄없는 뱃사공만 향해 나무라는 노래다. 버리고 가는 임의 소매도 변변히 잡지 못했으며 원망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아리랑>의 가사도 그렇지 않던가. 배신한 애인의 가슴에 비수를 찌르는 것은 <칼멘>극에 나오는 이야기지 결코 한국의 연정극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가만히 주저 앉아서 임이 십 리도 못 가 발병 나기만을 기다리는 연인들이 아니면, 소월素月처럼 한술 더 떠 진달래꽃까지 뿌려주는 실연이다.
진행형의 사랑과 과거형의 사랑
그만큼 관대해서가 아니라 인종과 순응 속에서 도리어 사랑의 여운을 간직하려 했기 때문이다.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하는 심정은 통곡을 하고 가슴을 쥐어뜯는 그 슬픔보다도 한층 짙은 것인지도 모른다.
체념, 자제, 인종..... 그리하여 사랑을 잃은 가슴은 더욱 연연하다. 재속에 묻어둔 불덩어리처럼 그렇게 쉬이 사위지 않는 감정이다.
한국인은 그 어느 나라의 사람보다도 사랑에 굶주리고 사랑을 아쉬워 하는 민족이라 했다. 남들도 그렇게 말했고 우리도 그렇게 느껴왔다. 그러면서도 그 '사랑'을 하는데에 있어서는 어느 민족보다도 미지근했던 것이다.
원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 다 그런 법이기는 하나 '만나는 것'보다 '헤어지는 노래'가 우리에게는 너무나 많다. 기다리다 지치고 보내다 맥이 풀린 사랑이다.
그러기에 병풍 그림이든 베갯모이든 짝을 지은 원앙새가 그려져 있고 쌍쌍이 나는 나비가 있다. 넋이라도 한데 가자는 맹세가 유일한 사랑의 사연이요 행복이었다.
분명히 그렇다. 한국인의 사랑은 진행형이라기보다 대부분이 과거형이다. 타버린 불덩어리를 주워서 화로의 재 속에 묻듯이, 때고 난 후의 구들장에 몸을 녹이듯이, 사랑의 불꽃이 끝난 그 뒤끝에서 애정을 간직하는 민족이다. 청상과부 같은 추억의 사랑이다. 한 번 애인<남편>을 잃으면 평생을 수절해야 하는 풍속도 그런 데에서 나온 것인지 모른다.
애인이 사라지면 사랑도 끝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 있어서는 애인이 사라진 후부터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사랑은 부재不在에의 연정이다.
책 흙속에 저 바람속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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