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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화, 그 불분명함에 대하여...차 한잔의 단상 2005. 12. 13. 00:40
물길은 열어주면서도 풍경은 닫아두는 닫힌 듯 열려있는 소쇄원의 담장
서양 건축에서는 안이 아니면 밖이다. 문을 닫고 들어가면 실내, 문을 열고 나오면 실외다. 오로지 안이 아니면 밖이다. 내 방, 너 방, 침실, 거실... 나의 공간과 남의 공간이 이 공간과 저 공간이 소유와 용도가 엄격하게 구별된다. 그런데 우리 한옥에서는 두부 모 자르 듯 그렇게 칼 같이 구별되지 않는다.
전 세계 어느 나라 건축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 한옥만의 독특한 공간이 있다. 처마와 대청이 그것이다. 처마 밑이나 대청 공간은 실내 공간도 아니고 실외 공간도 아니다. 중간 공간 내지는 실외 공간과 실내 공간을 연결 시켜주는 전이공간이다. 서양 건축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우리 한옥만의 멋과 아름다움은 이 처마와 대청에서부터 시작된다. 서양 건축에서는 문을 열면 밖이고 문을 닫으면 안이지만 우리는 밖에서 처마와 대청이라는 전이공간을 거쳐서 방 안으로 들어오고 거쳐서 집 밖으로 나간다.
처마 공간은 지붕으로 덮여 있어 비를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실내 공간적 성격을 갖고 있지마는 외기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실외공간적인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대청도 뒤쪽은 벽과 문으로 막혀있으면서 앞 쪽은 외기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혹 문을 다는 경우에는 보통 분합문을 달아 여름에는 접어서 천정에 매달아 완전히 개방 시켜서 쓰고 추운 겨울에는 그 분합문을 내려 차단하는 가변성이 매우 강조된다. 우리의 한옥은 더운 지방의 거주 형태인 남방계식 주거 양식이 북상하면서 그리고 추운 지방의 거주 형태인 북방계식 주거 양식이 남하하면서 한반도에서 만나 남북방계식 주거 양식이 아름답게 조화되고 있는 특징을 보여준다. 온돌방이 북방계식 주거 형태의 요소라면 대청이나 누마루는 남방계식 주거 형태의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과 한국 그리고 일본의 전통 건축물에서의 추녀선의 각도는 제각각 다르다. 중국의 그것이 매우 높고 일본의 그것이 낮고 한국의 그것은 그 중간에서 추녀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중국 전통건축물에서의 높은 추녀선의 각도와 일본 전통 건축물에서의 낮은 추녀선의 각도 그 사이에 우리 한국 전통 건축물의 추녀선이 있다.)
이런 전이공간적 요소는 우리 건축에서 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서 드러나는 특징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일본과 같은 해양 문화와 중국과 같은 대륙 문화가 역시 우리 한반도에서 아름답게 만나고 있다. 그래서 우리 문화는 중간적 전이적 성격과 더불어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한 집에서도 남방계식 건축과 북방계식 건축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런 문화적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또 한국 건축에서의 공간은 매우 신축성있게 사용된다. 예를 들어 안방은 밥 먹을 때는 식당으로 잠 잘 때는 침실로 손님이 왔을 때는 응접실로... 시시 때때로 그 얼굴을 달리해 쓰인다. 대청도 그렇고 방도 그렇고... 마치 대청이 여름에는 실외 공간으로 겨울에는 실내 공간으로 사용되 듯이.
소쇄원은 내가 매우 좋아하는 문화유적지 가운데 하나다. 그 소쇄원을 들어서면 담장 하나가 서있다. 대봉대 앞에서 시작되는 이 담장은 겨울에 해바라기하기 좋다는 애양단을 지나 꺽어져서는 계곡을 건너서 산 바로 앞에서 끝난다. 이 담장을 눈 여겨 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이 담장은 서양 건축적 개념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한 담장이다. 계곡물에는 열어두면서 풍광은 닫아두는 절묘한 담이다.
담 안은 내 공간이고 담 밖은 남의 공간이다. 보통 담은 내 공간과 남의 공간을 구별하기 위한 일종의 영역 표시물이며 동시에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내 공간을 보호하기위한 보안을 위한 구조물이다. 그런데 이 담은 대 밭 사이로 난 진입로를 걸어 들어오다가 그 중간 지접에서부터 갑자기 시작된다. 그리고 계곡 까지 건넌 담이 정작 산 바로 앞에 와서는 우뚝 멈춰 서고 만다. 그 산과 담 사이에 좁지마는 열린 공간으로 남겨 두어 사람이 그 사이로 나갈 수도 들어 올 수도 있다. 그 담은 안과 밖을 구별하기 위한 담도 아니고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내 공간을 지키기 위한 보안을 위한 담도 아니고 외부 세계를 완전히 막기 위한 담도 아니다.
굳이 이야기한다면 그 담은 닫으면서도 열려있는 그런 이상한 담이다. 막으면서도 열어 놓는, 닫으면서도 닫지 않기 위한 담이다. 윤 고산은 오우가에서 대나무 찬가를 부르면서 풀도 아닌 것이 나무도 아닌 것이 ... 맞는 것이 아니면 틀리는 것이 되는, 열린 것이 아니면 닫힌 것이 되는 그런 서구 합리주의적 발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담이다. 마치 대청 마루에 걸려 있는 분합문이 문도 아니고 벽도 아니 듯이 그래서 대청이 실내도 아니고 실외도 아니 듯이... 굳이 비유하자면 병풍이나 가리개와 같은 문이요 담이라고 할 것이다.
정원만 해도 그렇다. 옛 조상들은 내원과 함께 외원을 고려했다. 우선은 집 밖, 담 밖의 경치를 살폈다. 산이나 강의 흐름 등 보다 커다란 자연 과의 관계 속에서 담 안의 정원, 즉 내원을 조성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사람들은 담 안의 정원만 신경 쓰지 담 밖의 풍경과의 조화라든가 관계를 따지는 노력은 훨씬 없어진 듯하다.
이 땅의 옛 사람들은 정원 하나를 꾸밀 때도 우선은 외원을 살폈다. 숲이나 커다란 바위, 산세의 흐름이라든지 물길이라든지... 커다란 자연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즐기고자 했기 때문에 우선 외원적 요소를 따지고 가린 다음 비로소 그 대자연 속에 나의 정원을 꾸미고 가꾸는 것이다. 외원이 너와 나, 우리의 공적 정원이라면 내원은 나만을 위한 사적 정원이라고나 할까? 내원 보다는 오히려 외원에 무게중심이 있었던 것이다. 대자연의 밑그림 속에 내원은 화룡점정의 작은 악센트라고나 할까? 인공적 요소는 극히 아껴서 최소화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는 외원 개념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우리 집 담 안에 어떤 꽃을 심을까? 어떤 나무를 심을까만 고민하지 담 밖의 나무나 숲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것은 마이 스페이스, 내 공간이 아니라 아더 스페이스, 남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오늘 날 우리는 나와 남을 구별해야만 한다. 흑이 아닌 것은 백인 것이다. 흑과 백 그 사이에는 수백 수천가지의 회색도 있는데... 우리는 그 회색의 존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혹 인정한다고 해도 ‘회색주의자’라는 표현이 말해주고 있듯이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할 뿐이다. 사실 회색이란 세상에서 가장 개성적인 색깔, 흑색이 상대방인 백색을 위해 나의 개성을 희생시킬 때만, 반대로 세상에서 가장 개성적인 색깔 백색이 상대방인 흑색을 위해 자기의 개성을 희생 시킬 때만 가능한 색깔이다. 밤에는 새로 낮에는 쥐로 왔다 갔다하는 박쥐와 같은 기회주의자가 아니라 사랑의 색깔인 것이다. 즉 서양문화가 흑백의 문화라면 우리 한국 문화는 회색의 문화가 아닐까 한다. 나와 너만 있고 우리가 없는 시대의 정원은 그럴 수 밖에 없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소쇄원은 1300평만 문화재로 지정된다. 담 안만이 정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이 중시했던 외원은 오늘날 문화재 당국이나 담당 공무원들 머리 속에는 없기 때문에 절름발이 보존이요 복원을 피할 길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외원 공간은 남의 땅이고 문화재 구역이 아니기 때문에 흉측한 건물이 들어서도 막을 길이 없다. 그런 생각이 전국의 수많은 정자들. 정자 건물만 문화재로 지정한다. 거기서 바라보던 풍광은 다 망가지고 없는데 아파트에 공장에 비닐 하우스에 둘러 싸인 그 정자 건물만 문화재로 지정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는 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한국의 정원은 자연과 뚜렷이 구별되지 않는다. 인공과 자연이 엄격하게 구별되는 서양정원의 개념으로는 우리 정원을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인공은 없다’는 생각이 빚어내는 한국 정원과 자연은 정복 내지는 극복의 대상일 뿐인 서양 정원과는 그 출발점부터가 다르다.
일본의 정원 전문가가 한국에 왔다. 한국의 정원 전문가가 우리 궁중 정원의 대표라 할만한 창덕궁 후원을 구경시켜 주었다. 다 구경시켜 주고 돈화문 앞에 나왔는데 일본 정원 전문가가 물었다. “정원은 어디에 있스무니까?” 금강산의 만물상도 사람의 손으로 내 집 마당 안에 재현해놔야 직성이 풀리는 일본인들로서는 계곡의 너럭바위와 숲 속에 지극히 단촐한 정자 몇 개 벌려 앉아있는 창덕궁 후원이 정원으로 보였을 리가 없다. 어디까지가 자연이고 어디서부터가 정원인 지 잘 구별이 안 되는 한국의 정원...
최근에 심사하고 있는 박사 학위 논문 제목이 ‘애매한 광고 텍스트의 수용자 해독과정에 관한 연구’였다. 주제가 애매성이라고 논문의 내용조차 애매한 것이 문제기는 했으나 애매모호함, 그것은 우리 문화의 특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먼 산 비탈진 돌길을 오르노라니 흰 구름 뭉게뭉게 이는 곳에 인가 두 어채...” 우리나라가 서양인들에게 Land of Morning Calm. Hermit Country. ‘고요한 아침의 나라’나 ‘隱者의 나라’로 통한걸 보면 소쇄공은 비 온 뒤의 맑고 청량한 기분을 쫓아 소쇄원을 지었지만 한국의 풍경이나 한국인의 심성은 언제나 구름이나 안개 속에 갖혀 있었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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