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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
    차 한잔의 단상 2005. 12. 17. 10:09

    배부른 돼지와 배고픈 소크라테스


    좋은 집에서 맛있는 식사를 대접 받았다. 셀 수 도 없이 많은 접시가 상 위에 깔렸다. 육해공군의 산해진미가 나의 수저를 기다리고 있다. 먹는 내내 입은 즐거우면서도 마음은 그리 즐겁지 않았다.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에게 들어온 소리 때문이다. ‘선비는 먹는 것을 탐하는 것이 아니다. 학문을 탐해야지 선비가 목구멍을 넘기고 나면 똥이 되어 나올 음식을 탐해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한 끼는 늘 떼우는 한 끼였다. 굶기를 밥 먹듯 하던 사람들 때문에 ‘밥 먼니껴?’가 인사였던 그 시절, 맛은 사치였다. 그런 내게 식도락이 취미라는 사람들은 외국인 같이만 느껴졌다. 


    그런데 전라도에 와서 살다 보니 여기 사람들은 안 그랬다. 전라도 사람들은 좋게 말하면 음식의 맛을 즐기는 식도락가들이요 나쁘게 말하면 음식에 까탈스런 사람들이다. 내 입에는 맛있기만 한데도 같이간 전라도 사람들은 온갖 트집을 다잡았다. 경상도 사람들이 그저 때우는 한 끼라면 전라도 사람들은 그저 즐기는 한 끼였다. ‘다 먹자고 하는 짓이 아니당가? 잘 먹어야제. 이왕 묵는 거 잘 묵어야제.’ 그것은 그들의 삶의 이유이기도 했다. 오늘은 남원 추어탕, 내일은 풍천 장어.... 그 한 끼를 위해 비싼 기름을 날려 가면서 한 시간을 달려가는 그들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살던 안동은 음식이 맛있는 미향이 아니다. 외지인들에게 알려진 음식이라는 게 몇 개 있기는 한데 그건 맛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안동을 대표하는 먹거리 그러면 보통은 안동소주, 안동식혜, 안동간자배기(간고디이), 안동건진 국시, 안동찜닭... 들이 꼽힌다.


    ‘참나무 숯불갈비’, ‘짚불갈비’, ‘간장게장’, ‘삼합’... 전라도의 음식들은 대개 특별한 조리 방식이나 먹는 방법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그러나 경상도의 그 것은 음식의 형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 따로 밥 따로 준다고 ‘따로 국밥’, 물에서 건진다고 ‘건진 국시’, 제사 안지내고 먹는다고 ‘헛제사밥’이다. 무우채와 고춧가루가 걸죽하게 섞여 개밥과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이는 안동 식혜는 외지인들은 십중팔구 못 먹는다. 안 먹는다.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안동 찜닭도 안동 사람들은 잘 모른다. 구시장 골목에 있다는 원조 집도 정작 안동사람들은 아는 이가 별로 없다.


    안동 사람들이 간고디라 부르는 간자배기는 맛과는 전혀 상관없는 음식이었다. 내 머리 속에는 오로지 짜다는 생각 밖에는 남아있는 게 없다. 물론 맛있었다는 기억도 있지마는 그것은 정말 맛있어서 맛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 때는 ‘이밥에 고기반찬’이 부자의 상징이자 맛있는 음식의 대명사였다. 간고디가 고기 반찬이었기 때문에 맛있었지 정말 맛이 있어서 맛있는 것은 아니었다.


    간고등어라는 것이 원래부터가 맛이 컨셉트가 아니었다. 오늘날과 같이 교통이나 냉동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그 시절, 생선이 유통될 수 있는 최대한의 거리가 백리 남짓이었다. 소달구지나 지게가 아니면 다라이(?)에 이고 걸어다니면서 고기를 팔던 그 시절, 생선의 유통 가능한 기한이 겨우 하루 남짓, 거리상으로는 맥시멈 100리 남짓이었다. 그러나 안동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는 영덕 대개로 유명한 강구항이다. 그리고 내륙 깊숙이 자리한 안동과 강구항과의 거리는 200리가 훨씬 넘는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황장재, 가릿재와 같은 험준한 재를 두 개나 넘어야한다. 그러니 안동 양반들이 생선을 즐길 수 있도록, 조상 제사상에 생선을 올릴 수 있도록 짜낸 아이디어라는게 고등어 뱃속에 왕소금을 가득 채우고 겉에도 소금으로 도배를 하는 것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맛있게 먹을까의 산물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안동에서 고등어를 먹을 수 있을까?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유 홍준 교수가 안동 간고디이가 무슨 대단한 별미인 듯 써놓는 바람에 졸지에 안동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 되어 버렸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뗏놈(?)이 챙긴다는 속언처럼 잡기는 강구 어민들이 잡고 돈은 안동 사람들이 챙기는 꼴이 되었다. 나는 지방자치단체에 특강할 일이 있을 때마다 안동이나 나비로 떼돈을 벌고 있는 함평을 배우라고 말한다. 자기 지역에 나지도 않는 것도 잘만 활용하면 봉이 김선달이가 될 수 있거늘 하물며 특산물을 가지고도 장사를 못한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요즈음 텔레비전을 잘 보지 않는다. 틀었다 하면 달려드는 먹는 장면이 질리도록 싫기 때문이다. 못 먹고 죽은 귀신이라도 씌웠는지 여기를 틀어도 먹는 장면, 저기를 틀어도 먹는 장면이다.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요리를 먹고는 하나같이 맛있어서 죽겠다는 표정에다 온 세상 행복은 다가졌다는 듯이 엄지 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드라마조차도 툭하면 먹는다. 아직도 굶주린 배를 움켜 쥐고 잠자리에 들어야하는 수많은 이웃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저렇게 먹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던 그 대단한 로마가 먹다가 그리고 씻다가 망했다는 설이 있다. 폐허의 로마에서 폼베이에서도 내 눈길을 끄는 것은 거대한 목욕탕이었다. 로마 귀족들은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서 먹었다. 포도주에 손을 씻기도 했다. 근처에는 음식을 뱉을 그릇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 많은 산해진미를 다 먹을 수가 없기 때문에 맛만 보고 바로 뱉었다.


    요즈음 우리나라를 보면 우리도 먹고 씻다가 망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유성이나 부곡, 동래에만 온천이 있지 않다. 25도 이상의 지하수로 인체에 유해하지만 않으면 온천이라는 온천법 규정 때문에 가는 데 마다 온천이다. 온탕, 냉탕은 기본이고 족탕, 반신욕탕, 스파, 워터 파크, 사우나, 찜질방, 숯가마, 황토굴, 해수탕, 한방탕, 노천탕, 폭포탕, 녹차탕.... 탕, 탕, 탕... 별의 별 탕이 다 있다. 문제는 하루 종일 찜질방이나 사우나에서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매일 같이 거기로 출근하는 아줌마들을 나는 적지 않게 알고 있다.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어차피 먹을 거라면 맛있게 먹자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더러운 것이 문제지 목욕을 자주해 깨끗이 하는 게 무슨 시비란 말인가? 다만 정신이 살찌고 정신이 깨끗해지는 데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혀끝이나 피부 같은 육신에만 아부하는 오늘날의 세태와 계도해야할 텔레비전이 오히려 씻고 먹고가 웰빙의 전부인 양 부추기는 모습이 탐탁치 않다는 말일 뿐. 최근에 ‘부자가 아니라 잘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법정 스님의 말을 읽으면서 참으로 옳은 소리라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봐도 웰빙이란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육체가 모두 행복한 상태라는 것을 우리나라 텔레비전은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배 부른 돼지 보다 배 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던 선인들의 말은 화려한 조명과 소음에 가려 우리나라 텔레비전 제작자들에게는 잘 들리지 않는가 보다. ‘잘 먹고 잘 살아라’가 왜 우리나라에서는 욕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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