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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걸어서 충장로 까지살며 생각하며 2006. 7. 12. 01:50
마리아가 날이 더워서 밥 맛도 없고 밥하기도 싫다고 한다.
단골 냉면집에서 시원한 냉면 한 그릇으로 저녁을 해결하다.
동네 골목길 산책. 다르면서도 똑같은 집들.
똑같은 집은 두 채도 없지마는 그렇다고 다르다고 할 수도 없는 몰개성한 집들.
아름답지도 기능적이지도 않은 집들.
나는 가끔 이 땅의 건축가들에게 화가 난다.
인구가 백만이 넘는 이 메트로 시티 광주에서
과연 우리시대의 문화유산으로 남을만한 건축물이 뭐가 있을까?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축물 하나가 없다는 것은 비극이다.
대남로 숲길. 폐선 부지를 따라 아름다운 숲길이 생겼다.
이 아름다운 숲길을 따라 슬렁슬렁 걷다보니 어느새 광주천이다.
광주 천변 산책로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시내 곳곳으로 연결된다.
태풍 때문에 불은 물이 아우성을 치면서 달려내려가고 있었다.
물가에 앉아 한참동안이나 물을 바라본다.
눈에 띄는 것은 네온사인으로 하늘에 떠있는
교회의 십자가들과 요란한 러브 호텔 이름들 뿐.
프린스, 엔터, 상보르, 판타지아....
왜, 러브 호텔 이름들은 하나같이 외국어일까?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는 광주 공원을 한 바퀴 돌아서 충장로로 간다.
작정하고 나선 길은 아니었지만 걸어서 다운타운 까지 온 것이다.
막상 시내까지 왔는데도 별로 할 일은 없었다.
서양화가 오 지호 선생이 단골로 드나들던 카페도 있었을 것이다.
의재 선생께서 시내에 나오면 들리던 단골 다방도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 도시 어느 구석에서도 나는 그들의 체취를 느낄 만한 공간을 찾을 수가 없다.
5. 18 테마 카페 하나쯤 있어도 광주답지 않을까?
유럽의 도시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노천 카페도 없고...
날이 더워 팥빙수라도 한 그릇씩 사먹으려 했으나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모두 끝났다고 손사래만 내저을 뿐...
더위와 갈증을 식혀줄 방법은 없었다.
시끌벅적한 지하 술집에서 술 마시는 것 빼고는 별로 할 짓이 없어
결국 택시 타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 슬픈 일이다.
아파트를 들어서면서 쳐다본 하늘에는 휘영청 보름달이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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