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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에서
    살며 생각하며 2010. 3. 16. 11:32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에서

     

    기원이 시험 공부를 도와주었다. 도덕도 책을 달달 외워서 지필고사를 친단다.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 못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도덕이나 윤리조차도 아는 것으로 끝이다. 행하는 것이 점수에 반영되는 법이 거의 없다. 허긴 점수 때문에 행한다면 그것 또한 도덕이라고, 도덕적이라고 할 수도 없겠지만....

     

    옛날 공부와 오늘 날 공부는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을 사이로 갈라진다. 옛날 공부는 아는대로 행하는 지행합일, 즉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하나였는데 반해 오늘날의 공부는 아는 것과 행하는 것 사이에 별 관련이 없는 것이다. 아는 것은 아는 것(One thing)이고 행하는 것(Another thing)은 또 다른 것이다. 요즈음은 도덕 과목 성적이 그 아이의 성품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지 못한다.

     

    修行이란 바로 행동을 연습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실천이 곧 수행이다. 그 수행이라는 점에서 옛 선비들은 수도승이나 별로 다를 게 없었다. 선비는 배우고 익힌 바를 그대로 행하는 군자요 도덕인이었다. 하루 하루의 생활이 곧 수행이었다. 배워서 아는 것을 끊임없이 실천했다. 學而時習之면 不亦悅乎아! 논어의 첫 줄 또한 배우고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하지 않는가? 배우고(學) 익히는(習) 것은 둘이 아니었다. 學習은 하나였다.

     

    말 따로 행동 따로 그렇게 떠도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修行이 필요한 것이다. 비록 知行合一이 어렵기는 하지마는 몇 번, 몇 달은 아는대로 행할 수 있다. 그러나 初志一貫, 첫 마음을 끝 까지 가지고 간다는 것은 또 얼마나 지난한 일인가? 매년 새 해 첫 날이면 이런 저런 결심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作心三日로 끝나고 만다. 필남필부는 그렇다. 무언가 작심해 본 사람이면 초지일관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온 몸으로 안다. 누구를 존경하는 마음은 그 지행합일과 초지일관에서 나오는 것 같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한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것이다.”

     

    늘 그렇게 말씀하시던 법정 스님이 입적을 했다. 스님의 다비식을 보기 위해 송광사엘 다녀왔다. 스님이 스스로를 불 태우는 소신공양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법은 무엇이었을까? ‘잘(부자로) 사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바르게) 사는 게 중요하다’던 법정 스님. 다비장까지 따라온 1만5천여 추모객들은 스님의 가르침이 불길 속에서도 연꽃처럼 다시 피어날 것이란 뜻의 '화 중 생 연(火 中 生 蓮)'을 외쳤다. 스님은 그렇게 조계산을 지나는 한 줄기 바람으로, 구름으로 그렇게 떠나가셨다.

     

    송광사로 가는 길에는 사람과 차들로 넘쳐났다. 스님의 무엇이 이 많은 사람들을 이 산 속으로 불러 모았을까? 스님은 지행합일과 초지일관의 표상이셨다. 느리고 길게 송광사의 종이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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