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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自存心에 대해
    살며 생각하며 2010. 3. 22. 09:30

    (자존심에 대하여)

    몇 번 기원이에게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 부모님을 처음 보면 옛날 어른들처럼 문 밖에서 큰 절로서 아침 문안을 드리지는 않더라도 예를 다해서 문안 인사를 하라고. 몇 번 더 이야기를 했는데도 별로 나아진 게 없다.

     

    오늘 아침에 처음 만났을 때도 내 얼굴을 힐끗 쳐다보고는 그만이다. “기원아, 아버지가 아침에 부모님을 처음 뵈면 어쩌라고 했지?” 그 때서야 “안녕히 주무셨어요?” 하고 건성으로 말했다. 마른 행주 같은 무미건조한 한 마디였다. 자동으로 돌아가는 녹음 테이프 소리처럼 기계적인 반응이었다. 순간 확 기분이 나뻐졌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 받고 싶어한다. 매슬로우의 욕구 5단계설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남에게 무시 당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출세하고 싶어하는 것도,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하는 것도, 부자가 되고 싶은 것도... 모두가 남들로부터 존중 받고 싶기 때문이다. 뺨을 맞았을 때 왜 우리는 분개하는가? 종아리를 때리는 것과 뺨을 때리는 것은 같은 육체적 징벌처럼 전혀 같은 종류의 벌이 아니다. 종아리를 때리는 것은 그의 몸을 때리는 것이지마는 뺨을 때리는 것은 그의 마음을 때리는 것이다. 뺨을 맞을래? 종아리를 맞을래? 물어보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종아리를 맞겠다고 할 것이다. 그것은 종아리를 맞는 것이 뺨을 맞는 것 보다 덜 아파서가 아니다. 종아리를 맞으면 맞을 때는 아프겠지마는 그 아픔은 맞을 때 뿐이다. 그러나 뺨을 맞으면 맞을 때 아프지는 않지마는 맞은 뒤의 아픔은 길고도 길다. 그것은 내 육체가 모욕을 당한 것이기도 한 것이지마는 내 마음이 내 자존심이 더 큰 모욕을 당했기 때문이다. 뺨을 때리는 것과 절을 하는 것. 뺨을 때리는 것이 그의 인격적 무시, 모욕의 극치라면 절을 하는 것은 그의 인격에 대한 존중의 극치이다.

     

    얼마 전 <출세 만세>라는 티비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어깨에 별이 반짝이는 장군의 차림으로 나섰을 때와 노숙자 행색으로 나섰을 때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을 비교해 보았다. 결과가 어떠했을거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으리라. 같은 사람이었지만 그가 장군일 때와 노숙자일 때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하늘과 땅 사이만큼이나 멀고 달랐다. 그것을 겉 모습으로만 사람을 평가하는 인간의 천박성이나 얄팍한 세태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자존심이란 ‘자기 자신을 존귀하게 대접하는 마음’이다. 자존심을 셀수록 좋고 고집은 약할수록 좋다. 남을 존중하려면 우선 자기 자신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함부로 자기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는 것. 함부로 자기 인격을 개똥밭에 굴리지 않는 것. 그것이 자존심을 지키는 일이다. 자기를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남을 존중할 줄도 모른다. 내가 존중 받고 싶으면 우선 내가 그를 존중해 주어야 한다.

     

    한 두 번 이야기할 때는 이야기지마는 세 번 네 번.... 거듭하게 되면 잔소리다. 잔소리는 하는 사람도 자존심이 상하고 듣는 사람도 자존심이 상한다. 내 말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나의 자존심을 위해 기원이에게 108배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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