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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주>에서 오랫만에 가족이 외식을 했다. 기원이 생일날 하려던 것이 서울에서 형아가 내려오면 같이 하자는 기원의 희망에 따라 오늘 한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가족이 모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훨씬 즐겁다.
햇살이 하얗게 쏟아지는 충장로를 걸었다. 정환이 모자와 운동화, 기원이 봄 점퍼와 남방, 아내의 책과 구두 한 컬레를 샀다.
아내와 아이들이 충장로에서 쇼핑하는 동안 나는 잠시 헤어져 <예술의 거리>에 있는 골동품 가계들을 한바퀴 돌았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빈약하긴 하지만 골목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었다. 그래도 토기 몇 점과 초석 바디 하나는 사고 싶었지만 참았다. 고서당에서 창암의 글씨로 된 새 현판을 구경할 수 있었으니 발품 값은 한 셈이다.
골목을 나오면서 마지막으로 보고 싶은 현판 <춘헌>을 보려고 <茶山古房>엘 들렸다. 가계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이 집 주인은 차를 주제로 한 옛 물건들을 모으고 있다. 올해 <다향제> 때쯤 지금까지 모은 자료들로 전시회를 열 계획을 갖고 있다. "전시회 준비는 잘 되가요?" 한 마디 물었더니 신이 나서 노트 북을 열어 자기가 가지고 있는 차 관련 자료들의 사진을 보여준다. 다완, 차 주전자, 다실에 걸려 있었던 현판, 글씨, 차관련 서적... 등이 그 양에 상당하다. 탐나는 물건들이 꽤 많았다.
"이거 한번 보실래요?" 그러면서 깊이 감추워 두었던 책 한 권을 꺼내 보여준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차에 관한 책이다. 여러 사람의 글씨로 된 필사본이었는데 내 짧은 한자 실력으로는 그 내용을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상당히 귀한 자료인 것 같았다. 나도 그 내용이 궁금하니 번역되면 한 부 주라고 부탁을 해두었다.
갖고 싶은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현판들이다. <茶山古房>, <義山書室>, <睡堂>, <春軒>... 등인데 그 중에서도 <春軒>이 가장 마음에 든다. 글씨도 썩 마음에 들고 <봄집>이라는 뜻도 마음에 쏘옥 든다. 소한재 다실에 걸어두면 바라볼 때 마다 기분이 좋을 것 같은데 가난한 선생인 나로서는 선뜻 저지르기에는 적잖게 부담이 되는 가격이다.
가계 안에 걸어 놓으면 창문 너머로 볼 수 있을텐데... 그러면 시내 나올 때 한 번은 보고 갈 수 있으련만. 늘 깊이숨겨두는 지라 일부러 들리지 않으면 구경할 수도 없다. 사지도 않으면서 시도 때도 없이 꺼내 보여달랄 염치도 없고... 그 사이 혹시 누가 사가버리지나 않았을까 조바심은 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는 것은 불편한 일이지만 그래도 한가지 위안이 있다면 지나가다 우연히 보고 나 처럼 마음에 들어하는 이가 사가버릴 가능성은 그만큼 낮다는 것. 오늘은 주인의 양해를 얻어 디카에 담아온다. 보고 싶을 땐 사진으로라도 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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